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비 지불제도의 전면 재정비에 착수했다.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 등 기존 다층 구조를 통합하고, 성과 중심 보상(Value-Based Payment)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연구가 본격화하면서 의료계 보상 체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제도 비교를 넘어 성과 기반 보상(Value-Based Payment, VBP)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보상체계의 통합운영 방향과 중장기 로드맵 제시를 포함하고 있어 향후 정책 지형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심사평가원은 연구를 통해 행위별 수가제, 포괄수가제(DRG), 성과기반 지불제의 비교 평가와 함께 VBP 적용 모델 및 의료기관 수용 가능성 분석까지 수행할 계획이다. 총 예산은 약 1억 3000만 원이 투입되며, 수행 기간은 5개월이다.
“다층적 지불제도, 중복과 비효율 키웠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하에 행위별수가제(FFS)를 중심으로, 포괄수가제(DRG), 일당정액제, 신포괄수가제 등을 병행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원가기반 사후보상’, ‘네트워크 기반 보상’ 등 다양한 부가지불방식(Add-on payment)도 도입됐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의료현장에서 제도 간 중복성과 수가 간 불균형, 질 관리 한계를 초래해 왔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10년간 추진된 정책들이 의도한 목표 달성 여부나 의료기관 행태 변화에 대한 평가 없이 운영돼 온 점은 이번 연구가 지향하는 정책적 환류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는 복지부가 추진 중인 ‘제2차 필수의료 중장기 계획(2025~2030년)’,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 전략, 그리고 성과 기반 보상 도입 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정책 당국은 보상 체계의 ‘질 중심’ 전환을 통해 필수의료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재정의 낭비 없이 보장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진료비 지불제도별 효과평가 심층분석 연구’는 크게 ▲지불제도 유형별 운영 실태 분석 ▲비용·질·행태 변화에 대한 효과 평가 ▲통합형 지불제도 개발 및 단계적 이행방안 도출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행위별 수가제, 포괄수가제, 신포괄수가제 등 제도별 구조 비교 및 종별·중증도별 지불 비중을 분석하고, 최근 10년 간 정책(신포괄, 필수의료 보상 등)에 대한 성과 및 제도 만족도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재입원율, 진료비, 본인부담률 등 의료의 질·효율성 관련 정량 분석, 중복된 지불구조 통합 방안 및 성과 기반 기관단위 보상체계 구상, 위험조정(Risk Adjustment) 기반 성과평가 지표 체계 설계 시사점 정리가 추진된다.
의료계 "현장 준비 부족…단계적 전환 필요"
환자단체 "성과 중심 환영…정보공개·책임 병행돼야"
한편 의료계는 제도 개편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지표 설계의 복잡성, 인프라 불균형, 행정부담 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은 EMR이나 데이터 기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며 “기관 간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원의사 단체 관계자는 “성과 중심 보상은 의료의 정성적 가치를 정량 지표로만 판단하게 만들 수 있다”며 “지표 중심의 평가 방식이 진료 자율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환자단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많이 하면 많이 받는 구조는 환자에게 과잉진료 유인을 준다”며 “성과 중심 보상은 환자의 안전과 권리를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다만 “환자에게 결과 정보가 공개되고, 병원에 실질적 책임이 따르는 구조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불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된 만큼, 향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성과 중심 보상체계 시범 도입이나 제도화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온도차가 뚜렷한 만큼, 제도의 수용성과 실행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도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