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지난 18일 비대면진료 제도화 관련 의료법 개정안 7건을 병합·수정 의결하면서 논란의 중심이던 '제한적 약 배송' 조항이 사실상 제도권에 포함되는 방향으로 첫 단계를 넘었다.
그러나 약사법이 아닌 의료법에 '의약품 인도' 근거가 명시되면서 약사계 내부 갈등이 드러났고, 디지털 헬스 대전환 속에서 약국·약사 직능만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법안소위는 이날 비대면진료 관련 법안을 묶어 심사한 뒤 대면진료 원칙을 유지하되 특정 상황과 환자군에 한해 예외적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구조로 개정안을 정리했다. 또 의료기관 범위·처방제한·플랫폼 규제 등 세부사항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 의결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된 것은 비대면진료 후 의약품 전달 방식이다. 정부는 기존 시범사업 모델을 토대로 비대면진료 시 의약품을 약국 외 장소에서 인도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으며, 법안소위도 이를 기본 틀로 유지했다.
정부안은 약 배송 허용 대상을 ▲섬·벽지 등 의료취약지 거주자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등록 장애인 ▲1·2급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 5개 취약군으로 제한했다. 비대면진료 후 약국 방문이 사실상 어려운 환자에 한해 약사가 약국 외 장소로 약을 전달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 조항이 약사법이 아니라 의료법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대한약사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제한적 범위 내 의료법 포함을 조건부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시범사업에서 제한적으로 약 배송이 허용되고 있다는 점, 약사법 개정으로 논의가 확대될 경우 오히려 전면 허용 논리로 확산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울시약사회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통해 "의약품 전달을 의료법에 포함하는 것은 약사 직능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며 강경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시약사회는 약사 고유의 의약품 교부 행위를 의료법에 편입하면 직능 종속 구조가 고착화되고 제한적 허용이 '예외의 일상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대면 복약지도가 사라져 약료 공백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늘은 섬·벽지, 내일은 산간·농어촌, 결국 전 국민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는 약사회 중앙의 "조건부 수용" 입장과 뚜렷한 온도차를 드러나면서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내부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헬스 전환기…"환자 접근성 개선 필요"
한편 의료계와 의료IT업계는 이번 논란을 두고 "직능 간 해석 차이"로 평가하면서도 취약지 환자의 접근성 개선 차원에서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2025년 재택의료 시행, 만성질환 디지털 관리 확산, 전자처방전 활용 증가 등 의료환경의 변화 속에서 약국 역할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정책 연구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 조제·약 배송이 도입될 경우 약제 접근성이 약 23% 향상될 것으로 분석됐으며, 이동·대기 시간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연간 약 4000억 원의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가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비대면진료도 처음엔 같은 논쟁이 있었지만 기술·규제로 안전성을 확보해 왔다"며 "해외에서도 약 배송은 널리 시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디지털 헬스 플랫폼 업계 관계자도 "해외는 이미 원격 복약지도와 약 배송이 표준인데 한국만 20년 전 약국 방문 원칙에 머물러 있다"며 "고령층·취약지 환자의 접근성을 고려하면 제한적 약 배송은 제도적으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복지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상정되며, 약국 외 의약품 인도 기준과 지역 범위, 관리 절차 등 세부 사항은 향후 보건복지부령에서 구체화될 예정이다. 향후 본회의 심사 과정에서 관련 논의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