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약제의 보험상한가 인하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위법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제약사가 약가인하라는 불이익 처분을 지속적으로 중복해서 받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품산업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 제약계 3개 단체는 30일 오후 '합리적인 약가제도 모색을 위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이재현 성관균대 약학대학 교수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선 방안' 발제를 통해 "지난 2016년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가 개편되면서 3번의 약가인하가 이루어졌다"며 "이로인해 평균 4061품목에 대해 품목당 2400만원씩 1.5% 약가가 인하돼 평균 1081억원의 보험재정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실거래가 인하제도는 2년마다 요양기관의 의약품 청구액을 조사해 산출한 가중평균가격이 기준상한금액보다 낮을 경우 해당 약제의 상한금액을 가중평균가격으로 인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3번의 약가인하는 특정 품목에 집중돼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인하된 3924품목 중 71%인 2795개는 2018년에도 인하됐으며, 48%에 해당하는 1893개는 2016년, 2018년, 2020년 세 차례나 약가가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약가인하 집중 품목은 대부분 대형병원에 공급되는 의약품에 집중됐다"며 "특히 주사제의 경우 30% 인하 감면 대상이지만, 중복 약가인하 품목 중 주사제 비율이 44~48%에 달해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복 약가 인하 품목이 많은 제약사로는 한미약품, 종근당, 동아에스티 등 대형제약사가 포함됐고, 명인제약이나 환인제약, 한림제약 등 CNS나 안과 등 특정질환에 특화된 기업들이 많았다.

또 수액제 사업을 영위하는 JW중외제약과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 등도 인하 품목을 많이 보유한 기업에 포함됐다.)

이재현 교수는 "현재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사용량-약가 연동제'나 '급여범위 확대 사전 인하' 등 이미 약가를 조정하는 제도를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다"면서 "취지는 좋으나 제약회사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의 문제는 특정품목 집중현상 뿐만이 아니라 근거 자체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요양기관 청구금액 가중평균가격은 제약사의 출하가가 아닌 요양기관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유통업체의 판매가로 정해지는데, 대부분 두 단계의 도매상을 거쳐 거래되는 '도도매 거래'여서 이를 약가인하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약사법은 의약품 도매상이 실제로 구입한 가격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정부는 구입가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한 도매상 정보를 정부는 영업비밀보호라는 이유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면서 "제약사는 저가로 약을 공급하면 약가를 인하하고 요양기관은 약을 싸게 사면 장려금을 주는, 정책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현 교수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델파이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현행 운영되는 사후관리제도 중 효과성과 형평성, 다른 제도와의 연관성, 향후 지속성 등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교수는 "델파조사를 보면 동제도의 전면폐지와 부분 보완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며 "그러나 이 경우 기존 사후관리제도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이 높게 나타나, 새로운 사후관리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일본이나 대만, 호주의 경우 소위 'R-zone'을 운영한다. 이 범위 내에서는 약가를 인하하지 않아 완충 역할을 한다. 일본은 5%, 대만의 경우 신약 15% 또는 제네릭 6%, 호주는 10%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R-zon 도입시 최소 2~5%대를 제시하며, 이 경우 현행 10%의 인하율 상한선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는 방안도 병행해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신약에 대해서는 제네릭 출시까지 일정기간 약가인하를 유예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현재 9만 3946개의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급여 약제 2만 5835품목의 실거래가를 조사 중이다.

오는 10월 넷째 주에 실거래가 조사 항한금액 평가결과를 안내하고, 이후 제약사의 의견수렴과 고시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인하된 약가를 적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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