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적용될 제4차 실거래가 약가인하로 인해 이해당사자인 제약업계는 물론 약국가, 유통업계 모두 애로사항과 함께 제도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제도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 리베이트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약품비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지적하며 전면 폐지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개선점을 찾아겠다는 입장을 밝혀 제도 보완의 여지를 남겼다.
30일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산업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등 3개 단체가 주관한 '합리적인 약가제도 모색을 위한 정책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제약업계를 대표해 토론에 참석한 이병태 HK이노엔 팀장은 ▲합리적 조정범위 'R-zone' 도입 ▲주사제 등 원내 의약품 감면률 확대 ▲R&D 투자에 따른 감면률 확대 등 3가지 개선책을 제안했다.
이 팀장은 "약가인하로 1800억원의 재정을 절감했다고 하지만 1%미만 인하품목이 절반 수준인 상황에서 이들 품목의 청구액을 산출해보면 360억원 정도 절감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약가인하로 소요되는 제약업계의 사회적 비용이 500억원 정도"라며 "약국가와 유통업계까지 고려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실거래가 효과를 분석할 때 재정절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 등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적정수준의 합리적 조정범위인 'R-zone'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현재는 병원내 사용되는 비중이 높은 의약품의 인하요인과 인하율이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주사제 등 원내 비중이 높은 품목에 대한 쏠림 현상과 높은 인하율 문제, 그리고 일부 품목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약가인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사제의 감면률을 더욱 확대하고, 원내 사용이 높은 경구제들도 제도권 내에서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제약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제약업계도 이에 맞춰 R&D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약가인하로 의지를 꺾어서는 안된다"며 "현재 R&D 투자액에 따른 감면률 50%를 더 확대하고, R&D로 결과물을 창출하는 기업은 약가인하를 면제하는 방법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약국가-유통업계, 정산·반품 및 1원 낙찰 등 고충 호소
약국가와 유통업계는 약가인하로 인한 정산·반품 등 행정비용 과다 문제와 짧은 약가인하 예고기간 등을 지적했다.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는 "약국은 다품목 소량구매 특성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대형병원에 비해 구매력이 약하다"며 "약국이 전체 급여의약품의 70%를 청구하면서도 저가구매장려금 지급규모는 0.1%로 불과해 약국에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약가인하 시 재고정리, 반품, 정산 등 행정부담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데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약가인하 때마다 약가차액 손실보상 문제를 약국과 공급자 간에 정산하도록 떠넘기는 것은 정부가 약국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오 보험이사는 "정부는 약가인하로 인해 800~1300억 규모의 재정절감을 했으나 이 비용은 약국과 유통업계 발생하고 있는 손실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약가인하로 인한 재정절감의 실효성이 약가인하로 인한 약국의 약가차액 손실비용과, 약국과 유통업계에서의 반품및 차액 정산에 따른 사회비용을 비교해 제도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약가인하 예고기간도 너무 짧다는 지적이다. 오 이사는 "현재 매월 약가인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행일에 임박한 고시개정과 정부를 상대로 한 반복된 집행정지로 인해 일선 관련 행정업무로 인한 약국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심하게 혼란스럽다"며 "예측 가능하고 충분한 여유기간 확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견에 유통업계도 공감했다.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은 "현재 약가인하 예고기간이 5일 정도에 불과한데 최소한 한달 정도는 여유를 둬서 정산과 반품 과정의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유통업계의 저가낙찰을 호소하며 국공립병원을 사후관리 대상에서 제외하지 말 것을 제언했다.
그는 "현행 실거래가 약가제도는 요양기관의 저가구매장려금과 맞물려 1원 낙찰로 이어지는 저가구매를 발생시키는 등 시장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대형병원은 과당경쟁(제네릭 간의 품목 경쟁)을 통해 저가입찰을 유도하고 있고, 일부 도매상이 저가입찰과 저가납품을 반복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공립병원에 대해 사후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1원 낙찰 등 부조리한 입찰을 반복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있었던 공단 일산병원 입찰에서는 1개 그룹에서 60개 도매업체가 1원 투찰해서 1원 낙찰이 발생한 바 있고, 중앙보훈병원에서는 3개 그룹에서 보험약가 대비 30% 내외로 낙찰되는 등 저가 낙찰사례가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김 부회장은 "정부는 재정절감 차원에서 이러한 시장 왜곡현상에 대해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시로 인한 약가인하 반품임에도 일부 제약사는 100% 정산하지 않거나 정산을 해줘도 수개월 걸쳐 해주고, 일부 요양기관은 시급히 반품 정산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유통업체는 제약사와 요양기관 사이에서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정부 "리베이트 지속 발생·약품비 증가…사후관리제도 필요"
정부는 이 같은 업계의 요구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참석자들을 아쉽게 했다.
양윤석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고시가 상환제도 하에서 과잉처방, 유통마진 문제 등으로 실거래가로 바꿨고, 이 제도에서도 불미스러운 리베이트 문제가 지속 발생해 시장형 실거래가를 도입, 2014년 요양기관 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제도 도입의 취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한 델파이 조사결과에서 언급된 전면폐지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힌 셈이다.
양 과장은 "지난해 약제비로 20조원이 지출됐다. 과거 5년 동안 연평균 약품비 성장률이 7%가 넘고, 작년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9000억원 정도 약품비가 늘었다"며 "사후관리제도가 없으면 약품비 지출 증가를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까 싶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다만 과도한 행정비용이나 품목간 불균형 등은 보완할 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저가구매장려금을 포함한 연구를 진행해서 업계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애련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실거래가 제도는 고시가상환제도의 대안으로 도입돼 약 20년 정도 운영된 만큼 정성적·정량적으로 제도를 평가 해볼 필요가 있다"며 "국공립병원을 실거래가 대상에서 제외한 전후의 효과 분석, 저가구매장려금을 지급받은 요양기관별 약제 가중평균가의 변화 등 광범위한 종합적 연구들을 통해 개선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발제자로 참석한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교수는 "세미나, 포럼, 토론회 등을 하다보면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때문인 것 같다"며 "어렵게 마련한 제도라도 문제가 있다면 손을 봐야 하고, 첫번째 단추는 현실인식이 아닌가 싶다. 현장의 어려움을 정책입안자들이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