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25년, 고정된 분업 구조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병의협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병의협은 고령화와 지역 간 접근성 격차 등 변화된 환경을 기존 분업체계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병의협이 내놓은 대안은 '국민선택분업(선택조제)'이다. 이는 진료는 병·의원에서, 조제는 약국에서 받도록 고정한 현행 분업 원칙을 전제로 하되, 환자가 원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직접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제 장소 선택권을 부여하자는 구상이다. 병의협은 고령층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약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 특히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병의협은 선택분업을 단순한 원내조제 확대가 아니라, 변화된 의료환경에 맞춰 현행 분업 구조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최소한의 조정으로 제안했다. 또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의료기관 내 약사 배치, 자동조제기·이중 검수체계 도입, DUR·의약품이력관리 연동 등 조건을 갖추면, 기존 의약분업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고 환자 편의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약계는 원내조제 확대나 분업 원칙 후퇴 논의가 나올 때마다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대한약사회는 선택분업을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인 "처방은 의사, 조제는 약사" 구조를 약화시키는 조치로 규정한다.
약계는 현재 운영 중인 의사–약사의 이중 점검 체계와 지역 약국 기반 복약지도 시스템이 선택분업으로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분명 처방·대체조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택분업까지 논쟁 의제로 포함되면 직역 간 갈등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여론은 선택분업에 비교적 우호적인 흐름을 보인다. 병의협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전국 조사(성인 1000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67.3%가 "약국만 이용하도록 고정할 것이 아니라, 원할 경우 병·의원에서도 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하며 선택분업 도입에 찬성했다. 현행 체계 유지 응답은 28.6%에 그쳤다.
국민이 분업의 형태 자체보다 약을 어디에서 받을지에 대한 선택권을 더 중시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의료계 단체가 의뢰한 조사라는 점에서 해석에는 제한이 있다.
해외에서도 선택분업과 동일한 모델을 운영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일본은 원외조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료기관 내 조제를 병행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독일·네덜란드는 성분명 처방 권고, 저가 의약품 우선조제, 보험 인센티브제 등을 통해 약제비 절감과 접근성 문제를 보완한다. 대체로 분업 원칙을 유지하되, 지역별·상황별 불편을 별도의 정책 장치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의료계는 선택분업이 환자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약계는 조제 안전성과 지역 약료 생태계 유지 측면에서 우려를 제기한다. 선택분업을 도입할 경우 조제 책임 소재, 약물 정보 전달 체계, 약국 인프라, 환자 안전 기준 등에서 변화 폭이 작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고령화, 약국 접근성 격차, 비대면진료 확산 등 의약분업 도입 당시와 달라진 환경을 고려하면 제도 재검토 필요성은 존재한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환자 안전과 서비스 접근성, 직역 간 합의 가능성을 전제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