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가 다시 제도화의 문턱에 섰다.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이 11월 9일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공식화하면서, 코로나19 한시 허용 이후 5년 넘게 이어져 온 논의가 마침내 법제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의료계 반발과 정치권 이견으로 번번이 무산돼온 만큼, 이번에는 실제 제도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0일 열린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는 국민의 이용 경험을 토대로 한 정책 수요조사가 공개됐다.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조사(비대면진료 경험 환자 1,051명·의사 151명·약사 279명 대상)에 따르면, 환자 만족도는 97.1%, 재이용 의향은 95%로 나타났다. 특히 이동·대기시간 절감과 접근성 향상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다만 의료진과 약사는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의사 응답자의 절반 이상(54.3%)은 ‘면책 규정 부재’를, 52.3%는 ‘병력·복약 이력 파악의 어려움’을 문제로 지적했다. 약사들은 상품명 중심 처방으로 인한 대체조제의 어려움과 조제 지연, 전달 오류를 불편 요소로 꼽았다. 환자 역시 약 수령 과정의 번거로움(약국 확인·대기·이동 등)을 주요 불편사항으로 지적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접근성은 개선됐지만 안전성과 효율성 측면에서의 제도 정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도 제도화 논의가 구체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당정은 지난 9일 회의에서 비대면진료를 지역의사제와 함께 의료 접근성 강화를 위한 핵심 정책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국회 역시 제도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비대면진료와 관련해 의원급 중심 허용, 초·재진 구분 완화, DUR(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CDSS(임상 의사결정 지원시스템) 연동 의무화 등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다수 상정돼 있으며, 오는 11월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병합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비대면진료 논의의 핵심을 '허용 여부'가 아닌 '제도 설계의 세부 내용'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의료계는 비대면진료가 중단될 경우 즉시 대면진료로 전환할 수 있는 절차적 안전장치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및 보상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비대면진료는 초진 불가, 재진 환자 위주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약사회는 약사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복약할 수 있는 비대면 약료서비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순한 약 배송 허용이 아니라, 복약지도와 약물 관리 등 약사의 역할을 포함한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 비대면진료 업계는 플랫폼이 단순 중개를 넘어 DUR·CDSS 등 데이터 인프라 기반으로 운영돼야 하며, 자율규제를 통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비대면진료는 단순히 국민의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가 아닌 의료 접근성과 공공성의 새로운 기준을 시험하는 과제다. 환자는 편리함을, 의료계는 안전을, 정부는 효율성을 요구하는 가운데, 국회에서 이 세 가지 축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제도적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면 비대면진료는 오랜 논란 끝에 제도권 의료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