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환자만 존재하는 극희귀질환 영역에서도 건강보험 적용의 문이 열렸다. 10월부터 담즙정체성 희귀 간 질환 PFIC(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 치료제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가 급여를 적용받는다. 이번 결정은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의 초기 성과라는 점에서 정책적 상징성이 크며,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전략에 중대한 파장을 던진다.
PFIC는 담즙 배출이 차단돼 간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으로, 영유아기 발병이 많고 심각한 소양증·성장 지연·간 기능 저하를 동반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간 이식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이번 급여 적용으로 환자들은 간 이식 외에 경구제 치료라는 현실적 대안을 갖게 됐다.
'빌베이'는 보건복지부가 2023년 도입한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의 초기 성과다. 신약 허가와 급여 평가, 약가 협상을 병행함으로써 절차를 단축해 환자가 적기에 약제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당국은 극소수 환자라도 치료받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사례는 앞으로 등장할 다양한 희귀질환 신약의 등재 모델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한 치료제의 급여화를 넘어, 한국 건보 제도가 희귀질환 접근성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운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성과는 희귀질환 신약을 앞세운 글로벌 제약사들의 국내 전략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소수 환자 시장임에도 사회적·정책적 상징성이 커서,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을 우선순위에 둘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빌베이의 급여화는 해외 본사와 국내 지사의 협업, 정부와 환자단체의 압박이 맞물리면서 빠르게 성사됐다.
국내 제약사에도 시사점은 적지 않다. 희귀질환 분야에서 글로벌 공동개발, 라이선스 인 전략을 강화할 경우 신속한 국내 진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산업 전반의 혁신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환자 접근성과 재정 지속가능성
PFIC 환자는 국내에서 수십 명에 불과해 이번 '빌베이' 급여 적용의 직접적인 재정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모델이 단순히 한 질환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다수의 희귀질환 신약으로 확대될 경우를 주목하고 있다.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이 제도화되면 사회적 요구가 큰 다른 희귀질환 영역에서도 신속한 급여 진입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 접근성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국가적 자원을 어디까지 분배할 수 있느지가 관건이다.
환자단체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이번 결정을 "치료받을 권리의 상징적 확인"이라고 강조했다.
연합회 김재학 회장은 "간 이식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절망했던 환자와 가족들이 이제는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틀 안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며 "극소수 환자라고 해서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즉 재정 부담 논란과 별개로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번 결정은 삶의 전환점이자 사회적 연대의 신호탄이다. 국가가 희귀질환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제도로써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빌베이' 급여 등재는 단순한 신약 도입을 넘어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철학과 방향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