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북대병원 노조가 17일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2004년 이후 최대 규모의 국립대병원 파업으로 노조는 "누구나 아플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공공의료 확충을 촉구했다.
이번 파업은 임금 문제가 아니라 국립대병원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병원 재정은 급속히 악화됐다. 이미 만성 적자 상태였던 국립대병원들은 인건비 총액 제한과 정원 규제로 인력 충원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4개 병원노조는 "교육부와 복지부로 관리체계가 이원화돼 정책 일관성이 사라졌다"며 "공공병원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적자를 떠안고 있는데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이번 파업을 통해 요구하는 것은 ▲국가책임 강화로 공공·지역의료 살리기 ▲보건의료 및 돌봄 인력확충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권 강화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이건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공공병원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라는 게 정부 태도인데, 그 결과는 결국 국민 건강권 박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지역 격차 해소'와 '공공의료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내년도 예산안은 전임 윤석열 정부와 비교해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공동파업을 앞두고 최근 정부와 협의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보건의료관련 시민단체들조차 "슬로건만 화려할 뿐 구체적 계획과 예산대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15일 파업 지지 성명을 내고 "이번 투쟁은 환자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정당한 싸움"이라며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민간 자본에 맞서 공공성과 평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역시 "성장 산업에는 예타 면제를 적용하면서도 공공병원에는 같은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전임 정부의 답습"이라며 "정부가 기업 중심 의료 민영화 정책에서 벗어나 공공의료·공공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도 "의료대란 속에서 간호계가 공백을 메웠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와 공공병원 확충 같은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동참 의지를 표명했다.
반면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복귀로 간신히 안정을 찾는 와중에 또 다른 파업 변수가 생겼다"며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공백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립대병원 관리 주체인 교육부와 의료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가 어떤 조율을 보여줄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4대 병원노조는 "정부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교섭에 나서야 한다. 국립대병원은 공익적 기능 때문에 적자와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이를 병원 책임으로만 돌리는 건 무책임하다"고 압박했다.
17일 시작되는 국립대병원 파업이 공공의료 확충의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의료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