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메디팜스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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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도 지적됐던 검체 위·수탁 제도의 허점이 GC녹십자의료재단에서 발생한 표본 혼동 사고로 다시 수면 위에 올랐다. 

국내 진단검사 체계의 근간을 뒤흔든 이번 사건에 복지부는 병리 분야 인증 1개월 취소라는 강력한 조치와 함께 위탁 경로 투명화·전자 추적관리·표준 매뉴얼 강화를 핵심으로 한 전면 개편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는 단순한 규제 강화를 넘어 환자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진단 안전망'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GC녹십자의료재단에서는 수탁받은 검체 두 개가 병리 검사 과정에서 다른 환자의 검체를 혼동해 30대 여성이 유방암이 아님에도 가슴 조직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복지부의 조사 결과 위·수탁 관리 과정 전반에서 절차적 미비와 경로 추적 부재를 확인했고, 병리 분야 인증을 한 달간 취소하는 행정처분을 의결했다. 현재 GC녹십자의료재단은 해당 기간 동안 병리 검사를 수행할 수 없으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복지부에 보고해야 한다.

15년 전에도 반복된 검체 오류, 취약점은?

검체 위·수탁 과정에서의 안전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한 대학병원에서는 유방 조직검사 슬라이드 라벨 부착 오류로 환자가 불필요한 수술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병원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제한적으로 인정했으나, 사건은 개별 과오로만 처리됐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GC녹십자 사례는 과거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사고”라며 “제도적 허점을 방치할 경우 유사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검체검사 체계는 의료기관(병·의원)→1차 검사기관→대형 전문 검사센터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다.

1차 위탁은 병·의원이 자체 분석이 어려운 검체를 외부 검사기관에 의뢰하고, 2차 위탁으로 검사기관이 다시 전문 분석을 위해 다른 기관에 재위탁하게 된다.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여러 기관과 인력이 관여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표본 라벨·이송 오류 ▲중간 단계 관리 공백 ▲검사 결과 변경 시 추적 불가 등의 위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병리·분자진단과 같이 고난도의 전문 분석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위·수탁 단계가 길어질수록 오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번 사건 역시 이러한 취약성이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로 평가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행정처분에 그치지 않고, 검체 위·수탁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달 중 ▲대한병리학회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대한병원협회 ▲환자단체 ▲IT·물류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검체검사 제도 개선 협의체를 발족한다.

협의체는 세 단계 논의 절차를 거쳐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먼저 실태 조사와 사고 분석 단계로 최근 5년간의 검체 위·수탁 현황과 오류 사례를 수집·분석하고, 표본 혼동의 경로를 규명한다. 

이어 해외 제도 벤치마킹을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검사 위탁 관리·추적 시스템을 조사해 국내 적용 가능성을 평가하고, 바코드·RFID 기반 전자 추적관리시스템을 일부 기관에 시범 적용하고, 행정·재정 부담과 효율성을 검증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는 위·수탁 단계별로 필요한 법령 개정, 인증제 강화, IT 인프라 지원 방안을 동시에 논의한다. 

또한 의료기관·검사기관·환자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기술 도입과 규제 강화가 현장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율할 계획이다.

현재 개선안으로 ▲위탁 경로 투명화 ▲전자 추적관리시스템 도입 ▲표준 매뉴얼·인증 강화  ▲사고 즉시 보고·공유 체계 등이 논의 되고 있다. 

한편 복지부는 연말까지 개편안을 확정한 뒤 내년 상반기 관련 고시를 개정해 제도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개편 초기에는 검사기관의 행정 부담과 시스템 구축 비용이 늘어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검사 오류 예방, 환자 피해 최소화, 진단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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