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 동안 이어진 의료대란이 전공의·의대생 복귀로 일단락됐지만, 필수의료 공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의료 업무 조정’ 제도화를 전격 추진하며 제도적 안전판 역할을 꾀했지만, 시행을 앞둔 현장은 찬반 갈등으로 뜨겁다. 직역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제도의 실효성과 현장 안착 여부가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 업무 조정은 2010년대부터 꾸준히 논의됐지만, 의사단체의 강한 반발과 직역 간 갈등으로 제도화가 지연돼 왔다. 의료대란 사태가 가시화된 이후, 국회는 지난 8월 4일 제427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켜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 설치 근거를 마련했다. 법은 공포 6개월 후인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직역 단체·의료기관 추천자·시민·소비자·전문가 등 50~100명이 참여해 업무범위 조정과 분쟁 해결을 총괄한다.
현장 갈등, '시작 전부터 최고조'
법안 통과 직후부터 의료계와 정부의 신경전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가 요청한 정책 의견서 제출을 거부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복지부 산하 다른 단체들이 의견서를 제출한 것과 대비되며, 정책 추진 속도뿐 아니라 의료계 내부 의사결정도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긴장 완화를 위해 복지부 2차관이 의협을 직접 방문, 의료정상화 방안과 전공의 복귀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실질적인 근무 환경 개선과 처우 정상화 없이 제도만 도입하면 현장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번 법제화에 대해 “정부 주도 위원회 구성은 전문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무면허 의료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한 필수 제도”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예방접종·건강검진·현대 의료기기 활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간호조무사협회와 약사회 등은 직역 간 권한 불균형 해소와 협업 기반 마련에 기대감을 나타냈으며, 간호협회는 개별 직역법을 통한 규율이 더 타당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법안의 취지를 “직역 간 업무 범위를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조정할 공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협업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법안 대표 발의자인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본회의에서 “직종 간 업무영역 갈등을 민주적 합의 절차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법안”이라며, “의료대란 없이 의료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시행까지 남은 6개월은 법제화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위원회 구성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를 통해 직역별 참여 비율과 의사결정 구조를 명확히 하고, 안전 가이드라인과 교육·검증 체계, 표준 업무 매뉴얼 등 현장 중심의 세부 지침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의료계와 정부 모두 이번 제도가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로 이어져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지만,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다면 시행 초기부터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