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간호법’이 본격 시행에 들어갔지만 진료지원간호사(PA) 제도의 교육·자격 기준과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특히 진료지원업무의 표준화된 교육과정, 명확한 자격 기준, 통일된 교육기관 운영을 둘러싸고 간호계, 의사단체, 정부, 병원계 등 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각 단체별 핵심 요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대한간호협회는 구체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 정부와 의료계에 강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아울러 국민 건강권 보호와 환자 안전을 위해 시민사회, 환자단체 등과 연대해 정부안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정하고 안전한 진료지원업무 제도화를 위한 사회적 여론 형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진료지원간호사 제도의 공식화와 표준화된 교육·자격 기준 마련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의료계 내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며, 각 단체의 요구와 대한간호협회의 전략, 그리고 미국·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바탕으로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제와 전망을 살펴본다.
간호협회 "표준화된 교육과정·자격 기준·법적 보호체계 시급"
간호계는 진료지원간호사 제도의 공식화와 함께 분야별 표준화된 교육과정, 명확한 자격 기준, 통일된 교육기관 운영, 법적 보호체계 마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진료지원업무의 교육과 자격체계에 간호사의 전문성과 현장성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장외 투쟁을 펼치며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간협은 진료지원업무 관련 교육의 관리와 운영 권한을 간호 실무와 교육에 전문성을 가진 간호협회가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이나 병원 중심의 자체 연수 방식이 아닌, 공신력 있는 전문 교육체계와 자격 기준을 협회가 직접 설계·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부가 추진 중인 ‘진료지원업무 수행 규칙안’이 형식적 신고와 이수증 발급에 그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공신력 있는 자격 기준과 전문 교육체계 마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진료지원간호사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와 인력 배치 기준 등 실질적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지난 3일 열린 ‘간호사 진료지원업무 제도 정비 및 교육체계 확립 정책 토론회’에서 "간호법은 환자와 간호사의 안전을 위한 법이다. 의사교육은 의사가 한다. 간호사의 교육은 간호사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회장은 "간호법이 제대로 자리잡기위해서는 검증된 기관에서 검증된 과정으로 보수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면서 "간호협회는 독자적이고 유일한 간호사 자격 관리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지아 경희대 간호과학대학 교수도 "전담간호사의 전문성 제고와 환자안전 강화를 위해 각 분야별 직무역량 중심의 표준 교육과정 개발이 시급하다"며, "명확한 임상 경력 요건과 일정 시간 이상의 이론·실기 교육, 현장 연수 이수 등 구체적인 자격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일본,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들어 "전담간호사 업무범위와 일반간호사와의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하고, 표준화된 교육기관과 법적 보호체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협회는 간호법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며, 인권 침해 방지, 환자 중증도에 따른 간호사 배치 기준, 교대근무 지원 확대, 실태조사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자체 안을 마련 중이다.
종합병원협회 "병원 자체 연수로 PA 양성…현장 실무 중심"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들은 진료지원간호사 제도가 부실 의료와 의료체계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공신력 있는 자격 기준과 과별 전문성, 명확한 관리 주체를 강조하고 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진료지원 간호사에게 부실 의료 우려가 크고, 현행 교육과 자격이 공인되지 않았다"며, "공인된 교육과 자격시험을 통해 자격을 부여해야 하고, 직역 간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진료지원간호사(PA)를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자체 연수로 양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간호계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종병협은 "전공의 진료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제도의 합법화가 필요하다"며 "중앙집중식 전문간호사 제도보다는 병원별 자체 연수와 실무 중심의 현장 교육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종합병원협회가 의뢰한 의료기관 종사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병원 연수제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가중시켰다.
종병협은 '진료지원 간호사 양성기관'에 대한 설문에 대상자의 71.6%가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으로 답했고, 의사나 현재 PA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80% 이상은 병원 연수로 진료지원간호사를 양성하자는 대한종합병원협회의 주장에 찬성했다고 강조했다.
정부 "의사 지도·위임 하에 안전하게…직역 갈등 최소화"
3일 토론회에 참석한 박혜린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간호법 하위법령에 포함된 간호사 행위는 기존 시범사업 지침에 포함된 의료행위이며, 간호사가 하지 않던 의료행위를 허용해 주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는 "간호사에게 단독 처방권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의사의 지도나 위임 하에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진료지원 간호사 업무범위가 무한정 늘어나지 않도록 업무범위조정위원회를 통해 적정성을 심사하고, 직역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일본은 어떻게 운영되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진료지원간호사(PA)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이미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자격 간호사(NP)가 5년 이상의 실무 경험과 석사과정(2년)을 수료한 뒤, NP교육대학원협의회 시험에 합격해야 활동할 수 있다. 일본간호협회가 교육기관 지정·평가 및 자격 기준 설정의 중심 역할을 한다.
미국은 PA가 의사 감독 하에 진단·치료·약물 처방 등 폭넓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석사 또는 학사 수준의 체계적 교육과 국가 인증시험(PANCE) 합격이 필수다. 자격 유지와 재인증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들 국가는 모두 공신력 있는 자격증 체계, 체계적 교육과정, 협회 중심의 교육·자격 관리, 명확한 업무범위와 법적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진료지원간호사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명확한 자격 기준 및 업무범위 고시 ▲교육·자격 관리의 공신력 확보 ▲법적 보호 및 보상체계 마련을 통한 정부·의료계·간호계 협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 영역이다.
진료지원간호사 제도의 공식화와 표준화된 교육·자격 기준 마련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단계적 도입과 지속적 관리·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