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창립80주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의 동아제약(現 동아쏘시오홀딩스)은 창업자인 故 강중희 회장이 1932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중희 상점’이라는 위생재료 도매상을 개업하면서부터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약업계의 첫 발을 내딛기까지

그의 문중은 본이 진주(晋州)로 고구려의 병마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의 후예이며, 고려 조정당문학 겸 대사헌 강회백의 18대 손이다.
강중희 회장의 조부는 한학에 박식하여 동네에서도 손꼽히는 유생이었고 또한 한의원으로 추앙을 받아 환자들을 자주 돌보았다. 강중희 회장은 이러한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우고 때로는 약초를 말리거나 분류하는 작업을 거들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5세에 문중에서 세운 사설학원인 신광학원에 입학한 강중희 회장은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아 남다른 진도를 보여 서당에서 열리는 한시(漢詩)작문대회에서 늘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동급생들에게 천자문을 지도하는 반(半)교사 역할도 하며 선생을 돕기도 했다.
또한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당시 자주 하던 놀이인 씨름에서 작은 체구임에도 자신보다 훨씬 큰 친구들에게 재치와 민첩성으로 지지 않았다.
입학 후 서울에서 부임한 선생을 통해 강중희는 비로소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학원을 다니는 3년 동안 무엇보다도 큰 소득은 외지와 도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었다. 한번도 직접 가보지 못해 정확한 판단을 가질 수는 없었으나 농사일 말고도 잘 살 수 있는 길이 도회지에 가면 많이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 나마 인식하기 시작했다.
18세가 되던 해 강중희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더 넓고 큰 세계를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일하며 돈도 벌고 공부도 해 보겠다는 청년의 소박한 꿈은 냉혹한 현실에서 녹녹하지 않았고 2개월이 지나갈 무렵 부친의 사망 전보를 받고 귀국하게 되었다.
시골의 단조로운 생활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개화의 물결을 목격한 그를 가둬 둘 수 없었다. 현재 생활이 시간이 낭비일 뿐만 아니라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만이 뒤쳐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19세가 되던 1926년 가을, 그는 다시 짐을 꾸려 나고야로 떠났다.
봉제공장 견습공으로 다시 시작한 일본에서의 생활은 가혹했다. 학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온 일본이지만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성공해야겠다는 마음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강중희 회장은 결국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1927년, 장남 강신호(현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의 출생은 강중희 근심을 덜어 주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다.
두 번이나 고향을 떠나 더 큰 세계로 나갔던 강중희 회장은 다시 떠나기로 결심하고 1930년, 23세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