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시작해야 할 4기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환자의 보호자가 1억 원 치료비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급여를 기다리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대한혈액학회 김석진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25일 한국로슈가 주최한 미디어 세미나를 통해 환자 생존권과 제도의 괴리에 대해 호소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한국의 DLBCL 치료체계를 "선택지 자체가 없는 구조"라고 규정했다. 그는 해외 림프종 전문의들에게 "1차는 알찹(R-CHOP)밖에 없고 2차는 오래된 세포독성 치료만 있으며, 3차는 킴리아 하나뿐"이라고 했더니 "어떻게 그런 수준의 툴로 환자를 보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 종합 암 네트워크(NCCN)은 이미 1차부터 치료 표준을 재정립한 상태다. 폴라투주맙 기반 R-CHP는 1차 치료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았고 첫 재발이 1년 이내인 고위험군에는 카티(CAR-T)가 권고된다. 1년 이후 재발하거나 이식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이중특이항체 요법이 표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기본적인 구조가 급여 장벽으로 인해 현실 치료에 적용되지 못한다. 김 교수는 "우리가 모든 신약을 달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카테고리1로 지정된 약제만이라도 환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티 vs 이중항체? 둘 다 필수…상호보완성
DLBCL 치료에서 카티와 이중항체의 관계를 경쟁 구도로 보는 것은 오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 교수는 "카티는 강력한 항암효과가 장점이고 이중항체는 즉시 투여가 가능하며 고령·취약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구조를 갖고 있다"며 "둘은 우열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환자 상태에 맞춰 선택돼야 하는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상호보완적 구도가 국내에서는 급여 공백으로 인해 성립되지 않는다. 카티가 필요한 환자는 기준과 비용 때문에 치료 접근 자체가 어렵고 이중항체 역시 급여 미적용으로 인해 임상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김 교수는 "환자의 생존률을 결정하는 것은 치료의 다양성인데, 우리는 그 선택권을 애초에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치료해야 하는데…4기 환자가 마주한 '1억의 현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사례는 실제 환자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당일 진료실 상황을 언급하며 "전신에 병이 퍼진 스테이지4 환자가 내일부터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폴라투주맙 기반 치료비가 6사이클 합쳐 1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이 환자는 당연히 폴라-CHP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험이 안 돼 환자가 '집을 팔아야 하느냐'를 고민했다"며 "만약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아무 고민 없이 치료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 적용을 기다리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약가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생존권 문제이며 가족의 삶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 환자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최소한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카테고리1로 분류된 약제만이라도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재차 호소했다.
현재 폴라투주맙의 1차 치료 급여는 심평원에서 검토 중이며, 이중특이항체 컬럽리맵은 2·3차 포함 급여 신청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등재 시점은 불투명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