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경찰서가 한의사의 국소마취제 도포 후 레이저·고주파·초음파 기기 사용을 '면허 외 의료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불송치 처분을 내리면서 의료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한의사의 X-ray 사용 논쟁에 이어 누적돼온 직역 간 갈등이 다시 충돌하면서, 의료기기 사용 범위와 면허체계 원칙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는 성명을 통해 "사건의 핵심은 한의사가 면허 범위 밖의 의료행위를 했는지 여부"라며 "일반의약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침습적 시술의 의료행위성을 배제한 경찰 판단은 의료법 체계의 기본 취지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해당 국소마취제가 약국에서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이라는 점과 일부 교육과정에서 레이저·고주파 기기 사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특위는 이 같은 판단 근거가 의료현장의 실제 위험성과 법리적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한특위는 "주사기, 마취제 등도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지만 비의사에 의한 투여는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피부에 마취제를 도포한 뒤 레이저·고주파를 전달하는 시술은 의학적 위험성과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경찰이 '레이저수술기'와 '레이저침시술기'를 혼동한 것으로 보이는 결정문에서 대해, 사실관계가 부정확한 판단을 불송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신뢰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이번 불송치 결정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의협은 "해당 국소마취제는 일반의약품이고, 한의학 교육 과정에서 레이저·초음파·고주파 기기를 활용한 임상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의협이 사실을 왜곡해 직역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한의사 X-ray 사용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올해 초 수원지법이 X-ray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진단용 방사선 기기 사용 범위를 둘러싼 직역 간 갈등은 급격히 고조돼 왔다.
의료계는 "해당 판결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비형사 처벌 결정일 뿐, 한의사의 진단용 영상기기 사용을 합법화한 판결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반면 한의계는 "기소 자체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명확해졌다"며 입법적 정비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 논쟁은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 산업계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달 초 일부 의료기기 업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의사의 X-ray 사용이 이미 법적으로 허용됐다"며 규제 완화를 촉구하자, 의협은 즉각 "사법부 판결을 왜곡한 상업적 여론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의계 역시 해당 업체들의 기자회견 내용과 거리를 두는 입장을 밝히는 등, 판결 해석을 둘러싼 주장과 반박이 뒤얽히며 혼란은 더욱 증폭됐다.
결국 이번 불송치 결정은 단일 사건에 그치지 않고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범위라는 구조적 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의협은 면허체계와 환자 안전에 대한 원칙을 강조하며 정부의 명확한 기준 정립을 요구하고 있고, 한의협은 진단·치료 도구의 활용을 제한하는 현행 규제가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가운데 관련 법안 발의까지 이어지며 논쟁이 제도권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