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부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의협)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공공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정부 정책과 동일한 방향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의사 회원 사이에서는 "민심과 동떨어진 언행"이라는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수년째 이어지는 정부의 의료 인력·공공의료 정책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의료계 내부의 메시지 혼선이 심화되며, 전체 의료계의 정책 대응력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20일 성명을 내고 "의사 회원들의 민심과 배치되는 언행을 일삼는 인물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경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현재 의료계는 전 정권의 무리한 의료농단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올바른 방향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의료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행정권과 입법권을 동시에 거머쥐어 막대한 힘을 가진 정부와 여당의 의료악법 추진에 의료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탁고시 개정, 성분명 처방 추진, 한의사 X-ray 허용, 지역의사제 시행, 공공의대 설립 추진, 의료기사법 개정 등 의료 말살을 앞당기는 악법들을 추진하면서도 의료계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행태에 의사 회원들은 자괴감을 넘어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의협 고위직에서 활동하면서 의사 회원들의 의견을 가장 앞에서 받들던 인물들이 공공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말을 바꿔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내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고 병의협은 밝혔다.
문제가 된 인물은 김영완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과 박성민 포항의료원장이 있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를 통해 안정적인 의료인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는 충남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의협 대의원회 부의장, 감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박성민 원장 역시 11월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정책에 동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바로 직전까지 의협 대의원회 의장으로 2023년 간호법 비대위, 2024년 의료농단 비대위를 이끌었던 핵심 인사다.
병의협은 "의협 고위직 시절에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앞장서 지적하던 인물들이 공공의료원장 취임 후에는 현장의 문제점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회원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의협에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해당 인물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 시 중앙윤리위원회 제소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의협이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갖고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에만, 향후 의협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공공의료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회원 정서와 배치되는 발언을 반복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병의협은 현재 의료계 내에서도 회원 다수의 입장과 다른 주장이 산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에 대해 의협이 강력한 대처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