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대상으로 한 '관리급여(선별급여)' 제도를 새로 신설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의료계와 산업계가 동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이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와 사회적 편익 제고"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비급여 관리 명분 아래 헬스케어 산업 전반을 통제하려는 제도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18조의4 제1항에 제4호를 신설해 '적정 의료 이용을 위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 선별급여(관리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관리급여로 지정된 항목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5%만 지원받고, 본인부담률은 95%로 설정된다. 복지부는 이 방식을 "의료 남용 방지와 과잉 진료 억제"를 위한 '부분급여 관리'로 설명한다. 즉, 급여화되지는 않지만 보험 체계 내에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1차 관리급여' 후보군…도수치료·영양주사·유전자검사
정책 논의 과정에서 관리급여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항목은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영양주사, 미용·체형교정 시술, 유전자검사 일부 항목 등이다. 이들 항목은 비급여 이용률이 높고, 환자·기관 간 비용 편차와 과잉 이용 논란이 반복된 분야다.
특히 유전자 기반 개인 맞춤검사, 비만·항노화 클리닉, 영양·면역 주사 등은 최근 민간 헬스케어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영역으로 이번 제도 시행 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에 따르면 관리급여 지정 절차는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에서 우선 대상 논의 ▲요양급여 관련 전문위원회 검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최종 확정 순으로 진행된다. 법적 근거 신설은 '시작점'이고 실제 지정 여부는 향후 건정심 심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게 된다.
복지부 "의료비 부담 완화" vs 의료계 "산업 억제 신호"
복지부는 이번 개정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편익을 높이기 위한 관리체계 확립"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관리급여는 비급여 항목이라 하더라도 일부를 급여화해 보험관리 틀 안에서 이용량과 비용을 추적·조정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의료계와 산업계에서는 "비급여 관리의 명분 아래 헬스케어 산업을 제도권으로 묶어두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한다.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해당 항목은 보험 내 관리대상이 되어 임상적 유효성·효과성 검증 부담이 늘고, 시장 진입 속도도 늦어질 수 있다.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는 "복지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본인부담률 95%라는 높은 장벽은 사실상 비급여 통제 수단으로 볼수 있다"면서 "의료기기나 유전자검사 같은 신산업이 관리급여로 묶이면 연구·상용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전자 기반 개인맞춤 건강관리, 비만·항노화 클리닉, 영양·면역 주사 등 예방의학 영역은 최근 5년간 민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분야로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2조 원(K-BIO산업포럼 자료 근거) 규모에 달한다. 복지부가 이 영역을 관리급여 체계에 포함할 경우 '보험-비보험 통합 관리 체계'로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를 들어 유전자검사 서비스 기업이 관리급여로 지정될 경우 현행 '신의료기술평가'에 준하는 임상근거 제출·효과성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는 비급여 시장의 혁신 진입 속도를 현저히 늦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복지부는 "입법예고 기간 중 의료계·산업계·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세부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며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를 중심으로 과잉 우려가 큰 항목부터 단계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제도를 단순한 비급여 관리 수준이 아니라 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규제를 복지부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흐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 의료·헬스케어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산업진흥) △식품의약품안전처(안전관리) △보건복지부(보험·의료이용 관리)로 분산돼 있다. 하지만 관리급여가 본격화되면 복지부가 비급여 항목을 의료이용 관리 권한 하에 직접 포함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부·식약처가 담당하던 예방·미용·웰니스 서비스 영역까지 복지부의 관리권한 아래로 편입되는 구조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산업계에서도 혁신의료 진입 속도 저하를 우려해 제도 시행 전 '기준 명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GMSC(G밸리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관계자는 "관리급여 지정 기준과 절차가 불명확하면 산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관리급여가 일단 지정되면 기업은 임상 근거 확보와 비용-효과성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완전 급여 전환 또는 해제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관리급여는 복지부가 내세운 대로 의료비 부담 완화와 과잉 진료 방지를 위한 새로운 급여관리 도구다. 그러나 본인부담률 95%라는 높은 수준 그리고 비급여 중심의 헬스케어 산업을 직접적으로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관리와 산업통제의 경계가 모호한 제도'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