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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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당뇨 신약으로 세계를 휩쓴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는 시가총액 2182억 달러($218.22 B)로 글로벌 바이오기업 1위, 일라이릴리(Eli Lilly)는 8053억 달러($805.34 B)로 제약기업 1위 자리를 각각 굳혔다. 두 기업은 비만·대사질환 신약을 기반으로 AI 공정과 글로벌 공급망을 통합하며 산업의 중심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러나 한국 제약기업들은 여전히 내수 의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 상업화 속도가 느린 실정이다.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며 세계 시장을 겨냥한 혁신 전략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R&D 중심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지만 글로벌 상업화에 있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글로벌 바이오와 제약의 간극

최근 한국바이오협회가 미국 불핀처(BullFincher)의 2025년 11월 기준 시가총액 분석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시총 상위 10위 바이오기업에는 노보노디스크(1위)와 리제네론(2위, $66.33 B), CSL(3위), UCB(4위)에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5위, $39.56 B), 셀트리온(6위, $27.18 B) 등이 포함됐다.

시총 100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알테오젠(8위, $20.5 B), SK바이오팜(36위), HLB(47위), 펩트론(51위), 파마리서치(64위), SK바이오사이언스(74위) 등 총 8개 국내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중국도 항서제약, 베이진, 인노벤트 등 다수의 기업이 상위권에 포진하며 '아시아 바이오벨트'라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기술 기반 기업들이 신약 개발과 위탁생산(CDMO)을 병행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전통 제약 부문 상위 10위는 일라이릴리(1위), 존슨앤존슨(2위, $448.76 B), 애브비(3위), 아스트라제네카(4위), 노바티스(5위) 등 북미·유럽계 빅파마가 장악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10위권에 들지 못했고, 100위권으로 확대해도 유한양행(60위), 한미약품(76위) 두 곳에 그쳤다.

'R&D 중심'은 맞지만, 성과는 더디다

한미약품은 2015년 사노피와 약 5조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역량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일부 과제 반환과 개발 중단을 거치며 상업화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최근에는 롤론티스(호중구감소증 치료제)로 미국 시장 진입을 시작했지만 글로벌 매출 규모는 아직 초기 단계다.

후속 파이프라인으로 에페글레나타이드(GLP-1 유사체)와 삼중작용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지만 노보노디스크와 릴리의 시장 선점 속도를 따라잡기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유한양행은 얀센, 길리어드 등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수출을 통해 '국산 혁신신약' 이미지를 구축했다. 대표 파이프라인인 렉라자(Leclaza)는 얀센과 공동 개발 중인 병용요법이 2024년 국내 허가를 획득했고, 현재 미국 FDA 허가 심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글로벌 상업화 주도권은 파트너사인 얀센에 있다.

3분기 실적에서도 렉라자 마일스톤 기저효과로 일시적 변동이 있었지만, 매출 구조는 여전히 기술이전 수익과 내수 처방 중심이다.

이처럼 국내 제약의 성장 전략은 기술이전에 과도하게 의존해왔고 자체 판매망이나 해외 상업화 역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AI가 바꾼 신약개발의 속도, K제약은 걸음마 

릴리는 이미 엔비디아의 블랙웰 슈퍼컴퓨팅을 기반으로 'AI 신약공장'을 가동했고 노보노디스크는 전 공정을 디지털화하며 치료 생태계 기업으로 변모했다.

이들 기업은 데이터·AI·디지털 공정을 활용해 신약 개발 속도를 산업 단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빅파마와 K제약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자본력, 시장 규모, 임상 네트워크 등 태생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의 문제, 즉 기술혁신을 산업화로 전환하려는 구조적 의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 제약은 여전히 기술이전 한 건, 품목 허가 한 건에 일희일비하며 '산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제약의 위기는 단순히 시장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속도와 방향, 그리고 구조의 문제다. 바이오가 세계 시장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제약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시총 격차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구조의 차이 그리고 혁신을 감당할 의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한·한미의 정체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제약산업 전체의 '병목'을 상징한다.

한국 제약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단기적인 기술이전과 내수 중심 매출 구조를 넘어 독자적 상업화 체계와 글로벌 공급망 참여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AI·데이터 기반 연구,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파이프라인 확장, 글로벌 임상 직접 수행 등 실질적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내수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 한국 제약은 막대한 장벽 앞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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