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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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전면 시행을 앞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정책이 준비 부족 논란에 휩싸였다.

전국 지자체 절반이 전담조직조차 꾸리지 못했고 의료 연계망 부재로 통합돌봄의 핵심축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예산·인력·의료 인프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준비 없는 전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229개 지자체 중 절반 가까이 전담조직이 없으며 전담 인력이 0명 또는 1명에 불과한 지자체가 55%를 넘어섰다. 정부가 '살던 곳에서 돌봄받는 지역통합케어'를 내세우며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과 정책의 괴리가 커지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의 돌봄체계는 오랫동안 '시설 중심' 모델에 의존해왔다. 고령화 속도가 OECD 최고 수준으로 가속하면서 시설 수용 한계, 인력난, 예산 급증 등 구조적 압박이 심화되자 보건복지부는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거주지 중심으로 통합하는 '지역포괄돌봄' 전환을 선언했다.

이 모델은 ▲지자체 주도의 통합지원 조직 ▲의료·요양·돌봄 제공기관 간 연계 ▲퇴원·퇴소 이후 재가 지원의 연속성을 핵심으로 한다. 입법적으로는 2026년 3월 27일 시행 예정인 돌봄통합지원법이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복지부는 2023년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지자체 역량을 축적한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제3차 공모를 통해 시·군·구 98곳 추가 선정으로 전국 229개 지자체가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229개 지자체 평균 준비율은 43.2%에 불과했고, 전담조직이 없는 곳이 46.9%, 전담인력 0명인 곳이 30.6%, 1명인 곳이 24.5%로 나타났다. 특히 지역별 편차가 심해 경북의 경우 준비율 17%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으며, 재택의료센터 지정도 22개 시군구 중 4곳에 그쳤다.

의료 연계망 부재, 통합돌봄의 가장 약한 고리

전문가들은 통합돌봄의 '의료축'이 여전히 공백 상태라고 지적한다. 통합돌봄의 실질적 출발점은 병원에서 퇴원한 고령 환자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시작되지만 현재 다수 지자체는 이를 관리할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하다.

재택의료센터와 일차의료 방문진료 사업이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전체 참여율은 전국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의 장기 모니터링이나 응급상황 대응을 위한 방문진료 인프라도 제대로 확충되지 않아 환자가 다시 병원으로 재입원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병원과 지역 간 환자 이행(transition of care)이 사실상 끊겨 있다"며 "통합돌봄의 성공은 복지 행정이 아니라 의료의 연속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퇴원 후 환자 정보를 지자체가 공유받지 못해 돌봄 연계가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의료법상 환자정보 공유가 제한되는 데다 복지부와 지자체 간 시스템 통합이 완성되지 않아 의료-돌봄 간 '데이터 단절'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통합돌봄의 핵심은 병원 치료 후 '거주지 중심의 회복기 관리(Post-Acute Care)'를 구현하는 데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회복기 의료를 연계할 제도적 통로가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퇴원환자 연계사업'을 병행 추진 중이나 실제 연계율은 전체 퇴원환자의 7%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택의료학회 관계자는 "지자체가 돌봄 대상자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의료기관이 환자정보 제공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며 "의료-돌봄의 연결고리를 설계하지 못하면 통합돌봄은 단순한 복지행정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방문간호·방문진료·약료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시범모델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통합돌봄이 의료를 포괄하지 못한 채 복지 중심으로만 설계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통합돌봄 예산의 80% 이상이 사회복지 인력과 행정비용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료인력·수가체계 재설계 시급

시범사업 초기 지자체당 평균 9억 원이던 예산지원형 모델은 본사업 예산이 777억 원으로 축소되면서 지자체당 4억~1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복지부가 내년과 2027년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통합돌봄 인력 2400명의 인건비 또한 6개월분만 반영되면서 '반쪽 지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행시점은 다가오는데 준비지표는 여전히 시범단계 수준"이라며 "정책 일정이 앞서가고 실행 기반이 뒤처진 전형적 행정 리스크"라고 지적한다. 이에 복지부가 내세운 '내년 3월 전국 본사업' 목표가 현실적으로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합돌봄의 의료 연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인력 확보와 수가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택의료, 방문진료, 지역의사 네트워크 참여에 대한 보상구조가 없을 경우 의료기관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차의료기관이 중심이 되는 '지역의사 네트워크 모델'을 제도화하고, 재택진료 환자당 모니터링 수가와 방문의료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된다. 또한 요양병원·요양시설과의 진료정보 공유를 위한 법령 정비도 필수 과제로 꼽힌다.

제도적 틀은 마련됐지만 의료와 인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통합'을 불가능해 보인다. 의료와 복지의 연결고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때 살던 곳에서 돌봄받는 '통합 돌봄'이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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