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시장을 둘러싼 제약 공룡들의 패권 경쟁이 소송전으로 번졌다. 화이자가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사 멧세라(Metsera)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가 개입해 거래가 흔들리자 법적 대응에 나섰다. 비만치료제 시장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대형 인수전이 결국 법정으로 향한 셈이다.
4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화이자는 멧세라가 자사와 체결한 확정 인수계약(definitive agreement)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노보노디스크의 제안을 수용하려 하자 두 회사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제소했다.
멧세라 이사회가 노보노디스크의 상향 제안을 '우수 제안(superior company proposal)'로 판단하면서 계약이 뒤집힐 위기에 놓이면서 화이자가 '계약상 의무 위반'을 이유로 소송에 나선 것이다.
화이자는 지난 9월 멧세라 인수 계획을 발표하며 주당 47.5달러 현금 지급에 더해 임상·규제 마일스톤 달성 시 최대 22.5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총 73억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거래를 추진해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인수 건에 대한 반독점 심사(HSR Act)를 조기 종료하며 법적 제약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경쟁사 개입으로 거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비만치료제 시장, 'GLP-1 전쟁'으로 확대
멧세라는 GLP-1 계열 및 아밀린(amylin) 기반의 비만·대사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인 임상단계 바이오텍으로, 차세대 비만치료제 시장의 유망주로 꼽혀왔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Eli Lilly)가 각각 '위고비(Wegovy)'·'젭바운드(Zepbound)'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화이자는 지난해 자체 경구 GLP-1 후보 '다누글리프로론(Danuglipron)' 개발을 중단한 이후 외부 인수로 전략을 전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화이자가 내부 파이프라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멧세라를 인수하려 했지만, 노보노디스크의 상향 제안이 돌발 변수로 작용했다"며 "비만치료제 패권 경쟁이 기술 확보를 넘어 M&A·소송전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대 초 1000억달러(약 135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GLP-1 계열 약물은 단순 체중감량을 넘어 심혈관질환 예방, 당뇨병 관리, 대사증후군 개선 효과까지 입증되면서 제약사 간 '넥스트 블록버스터'로 꼽히고 있다.
국내 기술도 얽힌 글로벌 전선
흥미로운 점은 멧세라가 과거 국내 바이오텍 디앤디파마텍(D&D Pharmatech)과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던 회사라는 점이다.
양사는 2023년과 2024년 펩타이드 경구제 플랫폼 '오라링크(ORALINK)' 기반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기술은 멧세라의 일부 비만치료제 후보물질에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링크 플랫폼은 경구 생체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인 펩타이드 전달 기술로, 차세대 경구 GLP-1 개발의 핵심 기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비록 디앤디파마텍이 이번 소송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자사의 기술이 글로벌 제약사 인수전의 밑단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기술이 글로벌 M&A 구도 속 일부로 연결된 것은 고무적"이라며 "앞으로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계약 체결 시 인수·소송 리스크와 IP 보호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제약사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화이자,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 등 3강 체제에서 향후 제휴·인수전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 과정에서 국내 바이오텍이 기술 파트너 또는 인수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 시장은 단순한 체중감량 약이 아닌, 심혈관질환 예방과 대사질환 개선을 포괄하는 '생활습관병 치료제'로 진화 중"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기술개발과 시장 접근 전략을 정교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