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이미지
사진=AI 생성이미지

국산 신약이 해외 무대에서 연이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임상·허가 성과를 인정받으며 글로벌 입지를 넓혀가고 있으나 고율 관세 리스크의 현실화와 미국 내 약가 협상 압박은 새로운 장벽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국내 약가제도의 경직성이 더해지면서 한국 제약사의 혁신과 글로벌 도전 의지는 끊임없이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다. 성과와 위기, 기회와 제약이 교차하는 이 국면에서 어떻게 해법을 찾아낼지가 지속 성장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관세 100% 선언…제약업계 직격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특허·브랜드 의약품에 대해 10월 1일부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미국 내 공장을 건설 중인 기업은 예외로 둘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미국 경제 전문지들은 이를 기존 15% 관세 구상보다 훨씬 고강도 조치로 평가하며 제약·바이오 업계에 즉각적인 충격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제약사들은 관세 폭증으로 인한 가격 상승 압박과 수출 경쟁력 약화라는 악순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 제약사 주가가 발표 직후 급락하는 등 파급력이 이미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셀트리온은 선제적 해법을 내놓았다. 지난 23일 미국 뉴저지 브랜치버그에 위치한 일라이 릴리 소유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3억3000만 달러(약 46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 시설은 생산동, 물류창고, 기술지원동을 포함해 이미 가동 중이며, 유휴 부지까지 갖추고 있어 향후 증설 여지가 충분하다.

셀트리온은 이번 인수를 통해 미국 내 직접 생산 및 출하 체계를 구축, 관세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릴리와 기존 위탁생산(CMO) 계약을 유지해 초기 매출 안정성도 확보했다.

회사 측은 관세 회피, 물류비 절감, 시설 확보 이점 등을 감안할 때 1조5000억 원 규모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이를 두고 '트럼프 관세 시대의 생존 모델'이라고 평가하며, 다른 제약사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셀트리온의 이번 행보는 대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선제적 해법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모든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중견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인수나 신규 투자에 나설 자금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현지 공장 인수에는 최소 수천억 원대 자금과 규제 승인, 운영 인력 확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기업은 고율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거나, 해외 파트너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관세 리스크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만큼, 정부 차원의 공동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며 "공동 임상·생산 인프라 지원, 세제 인센티브 확대 같은 정책적 안전판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와 더불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약가협상은 글로벌 제약사의 최대 난제로 꼽힌다. 메디케어 협상 대상 확대와 강제 인하 압박으로, 일부 고가 약제는 승인 연차에 따라 최소 25~60% 가격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IRA는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약품 생애주기 자체를 바꿔 놓는다. 과거에는 특허 만료 시점부터 수익 감소가 시작됐다면, 이제는 협상 시점부터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곧 R&D 투자 여력 축소와 파이프라인 위축으로 직결된다.

국내 제약사에도 파장은 크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다국적사와의 기술수출 계약을 통해 미국 시장 매출에 로열티를 의존하는데 IRA 협상으로 수익 전망이 줄면 계약 가치가 낮아진다. 

업계에서는 “IRA 협상 확대는 한국 제약사의 파이프라인 가치 평가를 보수적으로 바꾸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분자 의약품 중심 전략을 고수하는 기업일수록 위험이 크고, 바이오·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차세대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옮기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내 약가제도 발목…"혁신 보상 구조 절실"

국내 제약사들도 약가제도의 경직성을 꾸준히 문제 삼고 있다. 한 제약사 임원은 본지를 통해 "국내 제약사에 가장 필요한 약가정책은 더 이상 균일화된 약가 체계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투입한 R&D 노력과 기술 혁신에 대한 정량적·정성적 보상이 약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무대에 노크하고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지금은 K제약의 생존 전략을 견고하게 형성해야 할 시기에 놓였다는 진단이다.

관세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구조로 현지화가 관건이다. 셀트리온의 릴리 공장 인수는 단순한 시설 확보를 넘어 관세 회피와 안정적 공급망 구축의 전형으로 꼽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제약사와 장기 CDMO 계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도 혁신이다. 앞서 제약계 관계가 언급했듯 균일화된 약가 체계에서 벗어나 기업의 혁신성과 R&D 투자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약가정책이 절실하다. 세제 혜택, 임상 인프라 확대, 규제 완화도 병행돼야 한다.

포트폴리오 전환도 시급하다. IRA 리스크가 큰 소분자 의약품 중심 전략을 재고하고 바이오의약품·세포·유전자 치료제·디지털 치료제 등 차세대 분야로 중심축을 이동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을 넘어 현재의 수익 기반을 방어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K제약의 성과의 결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지만 지금은 진짜 시험대다. 트럼프의 100% 관세 선언과 IRA의 약가협상 강화는 한국 제약사들에게 닥친 중대한 외부 충격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지금부터 혁신이 보상되는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 '골든타임'은 결국 또 하나의 놓친 기회로 기록될 것이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