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 제도 전반을 다시 짜기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이 "국내 제네릭 약가는 해외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이후 곧바로 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가격 인하가 아닌 구조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의약품 약가모델 재정립 방안'을 주제로 하는 정책연구용역을 가천대학교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했다. 연구 대상은 제네릭 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약가 책정 및 조정 모델이며, 오는 12월말 결과 도출을 목표로 한다.
이번 용역은 지난해 진행한 '약가 상한금액 조정 기전 통합 연구'의 후속 조치 성격이다. 당시 연구가 기존 제도의 단순 비교에 그쳤다는 평가에 따라, 이번에는 실효성 있는 개편안을 마련하겠다는 게 복지부 입장이다.
"제네릭이 해외보다 비싸다"…구조개선 선행될까
복지부가 약가제도 손질에 나선 배경에는 건강보험 재정의 압박과 국내 제네릭 가격의 상대적 고평가 문제가 있다. 복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혈압·고지혈증 치료제의 제네릭 가격은 A8 국가(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대부분보다 비쌌다. 고지혈증 약값은 영국 대비 10배, 당뇨약은 일본·이탈리아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정은경 장관은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한정된 재정으로 최적의 약제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약가 관리가 중요하다"며 개편 의지를 공식화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복지부가 추진하려 했던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제도'는 업계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이번 연구 결과에 따라 정책의 방향성이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제약업계는 '가격 인하'만을 강조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제약사의 상당수는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제네릭에서 거두고 있으며 이는 신약 및 개량신약 R&D의 재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2012년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당시 일부 제약사의 매출은 최대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이는 R&D 축소와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복지부가 "제네릭 수익이 신약 개발로 선순환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는 수익성 저하에 따른 시장 철수다. 최근 몇 년간 해열제, 항생제, 마취제 등 필수의약품의 공급 부족 사태가 반복된 것도 낮은 약가 탓에 기업들이 생산을 기피한 결과다. 약가 인하가 결국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는 맥락의 산물"…정책 정밀성 요구되는 시점
정책의 설계는 단순 비교가 아닌 제도적 맥락에 기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시장 경쟁 구조를, 일본은 자동 가격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약가·급여·공급을 통합관리하는 독특한 체계를 운영한다. 복지부가 제도 정비에 나선 지금 '단순 인하'가 아닌 '정밀한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미 우리는 다양한 약가사후관리 제도가 시행 중으로 중복 적용 우려가 크다"며 "약가인하가 아니라 구조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네릭의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약가와 연구개발(R&D) 재투자 간의 연계 구조를 마련하면서 보상체계를 구축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절실하다"고 했다.
일련의 논란과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이번 약가모델 재정립 용역이 단순 약가 조정을 넘어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