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당(保堂) 윤창식 사장은 1890년 2월 13일 경기도 고양(지금의 마포구 공덕동)에서 태어났다. 윤창식 사장의 집안 어른들은 병풍 그림인 책가도(冊架圖) 속에 집안의 평안을 비는 의미로 그려 넣은 병인 보평(保平)처럼 집안을 튼튼히 보존하면서 번영으로 이끌길 바라 윤창식 사장을 보당(保堂)이라 불렀다. 윤창식 사장의 아호인 보당(保堂)은 이러한 연유로 얻게 된 것이다.

보성전문학교 시절 윤창식 사장

6살 때부터 한학을 익힌 그는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고, 시대를 읽는 눈이 특별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1908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어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상과에 입학 후 1914년 졸업했다.윤창식 사장이 보성전문학교를 택한 것은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는 상업학교 등 공립학교가 상당 수 있었지만, 공립학교 대부분이 일제가 필요한 요원을 양성하고 있었다. 보성전문학교는 당시 유일하게 민족의 손으로 세운 고등교육 기관이었으며, 항일의 민족적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눈앞의 취직보다는 애족의 길로 나선 것이다.

윤창식 사장은 학교를 졸업한 직후에도 애족의 길을 이어나갔다. 1915년,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해 경제 독립운동 전개를 꿈꾼 것이다. ‘조선산직장려계’는 서울의 지식 청년들 130여 명이 중심이 되어 경제 자립을 통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설립했으며, 윤창식 사장은 총무로 일하며 조직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자금난에 시달린 다른 독립운동 단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주식제를 주장해 재정 자립을 도모했다. 1주의 가격을 20원으로 책정해 계원 한 사람 당 10명의 주주를 모집하도록 한 것이다. 독립운동 단체 운영에도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 윤창식 사장의 기업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제의 압제 속에서 이러한 활동이 오래갈 리 없었다. ‘조선산직장려계’ 활동을 본격화하던 1917년 조직이 경찰에 적발되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윤창식 사장을  비롯한 계의 간부들이 모두 감옥에 갇혔지만, 다행히 얼마 후 석방될 수 있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출범 초기부터 철저히 산업진흥단체로 위장한 덕분이었다. 일제 강점기 초반, 경제 독립운동은 무위로 돌아갔으나 민족자립경제를 위한 의지가 물산장려운동과 민족자본 형성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의암 손병희 선생과 함께 야유회를 간 보전 학생들
조선산직장려계 활동으로 옥고를 치른 윤창식 사장은 경제인으로 활동해 재력을 키우고, 음지에 꾸준히 독립운동을 지원해나갔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빈 계층을 도왔던 보린회 사업에 깊이 참여해 1920년부터 1959년까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민족 운동 단체인 신간회에도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등 나라의 독립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창업 40년 만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동화약방이 동화를 이끌어갈 인물로 윤창식 사장을  꼽은 것도 높은 인품과 경영인이 지녀야 할 능력을 가진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창업주인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민강 사장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급기야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에 큰 위기를 맞았고, 민씨 문중은 동화를 살릴 수 있는 인물에게 회사를 넘기겠다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동화약방본포 입구

민씨 문중에 동화약방의 인수를 제의받은 윤창식 사장은 숙고에 들어갔다. 여러 사업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수에 대한 재력은 충분히 갖췄으나 제약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익힌 한학에 대한 조예로 많은 의서를 익혀 한약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있었다.

조선 시대 유학자 중 전문적으로 영업하지 않더라도 의학을 익히는 사람이 많았으며, 윤창식 사장 역시 가족이 아플 때 웬만한 처방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약에 대한 지식을 갖춘 상태였다.

동화약방이 민족 기업으로 국민 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고 독립운동으로 사회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던 윤창식 사장은 장고 끝에 생명을 살리는 좋은 약을 만들어 민중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동화약방 인수를 결심한다.

동화약방을 인수한 보당 윤창식은 1937년 2월 26일 제 5대 사장으로 취임한다.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