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윤용구가 강가에 앉아 포즈를 취한 모습. (1937년) 
윤용구 회장은 충북 청원군 가덕면 수곡리 해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나 은반지, 은비녀 등을 만들어 파는 금은방을 운영했으나, 근검하고 절약정신이 투철하여 정작 가족들의 치장이나 씀씀이에는 엄격했다.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읜 윤 회장은 이러한 아버지의 성품을 이어 받았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슬픔은 강한 자립심으로 승화되었고 또 이렇게 길러진 대범한 성격은 어려서부터 여러 나이대의 친구들을 두루 사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면모에, 근면 성실을 강조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더해져, 훗날 일동제약의 성장을 이끄는 본바탕이 되었다.

그는 의약품은커녕 제대로 된 먹거리도 변변치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절 많은 이웃들이 병치레에도 마땅한 약이 없어 고통 받는 것을 수없이 보아오다 청주고보 졸업 무렵 인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서울 약대의 전신인 경성약학전문학교로의 진학을 결심,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입학 후 약전생활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보람을 주는 동시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느 날은 마음이 맞는 급우 3명과 무전여행을 떠나 고생하며 개척하는 인생을 먼저 맛보기도 했다.

그에게 무전여행은 무엇보다도 세상은 넓다는 것, 인생은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또, 어떠한 어려움도 용기와 지혜로 대처하면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무전여행 경험은 그가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포부를 길러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경성약전 졸업 후 윤 회장은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의 실습생이 되어 병원의 지시에 따라 약을 조제하고 제제약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5개월에 걸친 무보수의 실습기간동안, 힘들었지만 유익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재직하던 시기에는 적지 않은 성병환자들이 찾아왔는데 그는 환자들을 보며 ‘성병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사회 속에서, 약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실습을 마친 후 윤 회장은 약을 조제하는 몇 곳의 제약소에 취업하여 사회 경험을 쌓게 되었다. 당시 시중의 의약품 80%이상이 일본 약이었던 상황 속에서 윤 회장은 보약, 진통제 등을 직접 만들며 긍지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건강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는 회사의 모습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끼며 직접 제약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청년 송파와 일동의 태동

윤 회장은 1940년, 삼양공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자립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제약과 판매도 모두 직접 해야 했고 사무실도 안암동의 자택을 이용하는 등 제약회사라고 하기엔 아직 초라한 수준이었다. 회사의 경영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빚은 늘어갔고,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당시 세계정세는 제약회사들을 더욱 어렵게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윤보다는 보건’이라는 흔들림 없는 철칙으로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몰두했다. 어쩌면 이 철칙은 회사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했지만, 이렇게 고수한 “의약품의 근본은 사람이다”라는 철학은 훗날 일동제약의 창업이념이 된다.

1948년 삼양공사의 모습,
윤용구 회장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홍진산이라는 약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홍진산은 일종의 해열제로 폐렴에도 효과가 좋았다. 홍진산은 시판된 지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도 평양에서까지 찾아와 주문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고, 그의 제약 실력은 물론 정직한 인품도 당시 업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홍진산의 성공으로 그간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 삼양공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게 된 윤 회장은 태평양 전쟁으로 경영난을 맞고 쓰러져가던 극동제약을 인수하고, 기업 정비령의 대상이었던 5개의 군소제약사를 흡수 통합해 1941년 극동제약(이듬해 일동제약으로 상호 변경)으로 정식 출범하게 된다.

회사가 골격을 갖추자 창신동에 새로운 사무실을 열고, 5개 제약사의 30여종의 품목을 5개 품목으로 정비했다. 그리고 이 약품들의 선전으로, 격동의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일동제약의 시작이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