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業輔國의 사명감으로 창업

종근당의 창업주이자 한국제약계의 거목이었던 고촌 이종근 회장은 1919년 9월 9일 충남 당진에서 부친 이택기(李宅基) 공(公)과 모친 신택순(申宅順) 여사(女史)와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일합방의 망국적인 슬픔과 가난을 몸소 체험하며 유년시절을 보낸 이종근 회장은 13세에 서울로 상경해 철공소 견습을 시작으로 쌀 배달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땀의 대가를 배워 나가며 수많은 일을 전전했다.

1939년 봄 무작정 뛰어든 약품행상을 시작하며 ‘정직과 신용’, ‘하면 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단순히 약을 판매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약을 만들어야겠다는 꿈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1941년 약관 23세에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종근당의 모태인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설립, 약업인으로서의 큰 뜻을 펴기 시작하였다. 6.25동란 당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부산 피난시절 재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가공장을 짓고 ‘염산에페드린정’, ‘산토닌정’ 등의 약품을 생산, 공급해 전란의 시국에 큰 힘이 되었다.

고촌 이종근 회장은 신념과 열정으로 195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종근당제약사’로 회사명을 개명하고 해외유수의 제약사에 눈을 돌려 한국 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했다.

국내 최초로 美 FDA 승인 획득

1971년 3월 동탑산업훈장 수훈
1968년 국내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고촌 이종근 회장의 제약인생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업적 중의 하나이다.

당시 세계적으로도 FDA의 승인을 얻은 제약회사는 미국 외에 100개 회사 정도였고 FDA 승인을 얻으려면 미국의 상위 제약회사에 견줄만한 기술수준을 갖춰야한다는 선행조건이 있었다.

FDA에 대한 도전조차 무모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 고촌 이종근 회장의 FDA 도전과 성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준 개가였으며 제약 산업 전반에 '하면 된다'는 고무적인 분위기를 심어주었다.

고촌 이종근 회장은 한국 제약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었고 한국에서 생산한 항생제가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종근당은 이를 계기로 항생제를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9백만불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는 등 국내 전 산업계 매출규모에서 78위에 랭크되어 일류 회사의 반열에 오르는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제약업계 최초 중앙연구소를 설립

1972년 처음으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내 제약산업의 본격적인 연구개발시대를 열었다. 의약품의 생산과 판매에 급급했던 시대에 신약개발이야말로 국내 제약산업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제약사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업계 최초로 설립된 종근당 중앙연구소는 첨단 제약기술의 개발과 신약창출을 위해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생명의 미래학을 추구하면서....”라는 유명한 종근당 기업이미지 광고와 같이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이러한 신약개발의 토대는 2003년 항암제 신약 ‘캄토벨’의 탄생을 가져오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국내 최초의 원료 합성공장 건설과 사세확장

1976년 9월 통일의 종 타종식
1965년 국내 최초로 당시 규모로는 동양 최대규모인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했다.  

1974년에 완공된 한국 최대의 의약품 원료 발효공장은 고촌 이종근 회장의 오랜 꿈이자 제약업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항생제의 기초 원료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완전국산화가 가능해짐으로써 우리나라 제약기술이 세계수준으로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발효공장의 생산능력은 11개의 발효조가 모두 가동될 경우 항생제 원료 1백 7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경제규모로 국제적인 수준이었다. 종근당의 자체기술로 생산공장을 건설하여 원료의 국산화를 통해 의약품 수입을 대체함은 물론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기업 자체의 이윤보다는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좀더 저렴하고 손쉽게 약을 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기업인이기에 앞서 참다운 제약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1980년대 한국경제가 수출 진작에 매진하고 있을 때 고촌 이종근 회장은 세계적인 제약기업들의 선진화된 제약기술과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기위해 외국 선진 제약기업들과의 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국내 제약산업이 국제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데 기여했다. 1980년 한국롱프랑제약 주식회사, 1983년 한국로슈, 1986년 주식회사 한국그락소 등을 설립하여 국제적인 면모를 갖춘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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