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산업의 효시인 제약산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제약업을 시작해 우리나라 기술산업의 효시가 된 제약산업의 현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고촌 이종근 회장의 생애는 아직도 제약업계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계의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고촌 이종근 회장은 종근당 창업이후 한평생을 제약업에 몸담아 ‘약업보국’의 사명을 실천하면서 기존의 틀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의 불가능에 도전하여 새로운 성과를 이루어 냈으며 우리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6.25동란 중 부산 피난시절부터 그 당시로선 첨단 기계인 반자동 로터리 정제기를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도모한 일, 모두가 원료수입에 의존하던 때에 자체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생산 공장의 계열화를 이루고 1968년 정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함으로써 한국 제약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을 바꿔 놓은 일 등이 그러하다.
국민건강과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남보다 한발 앞서 준비하고 추진해왔으며 그러한 고촌 이종근 회장의 노력들은 종근당은 물론 한국 제약산업이 현대적 제약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 없는 사회를 꿈꾼 참제약인
고촌 이종근 회장은 1939년 약품행상을 하면서 처음 약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제약업에 대한 꿈도 갖게 되었다. 단순히 수입한 약을 그대로 판매하는 행태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기 손으로 직접 약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종근당을 창업하게 된 것이다.
우리 국민의 건강은 내 손으로 직접 지켜야 한다는 소박한 꿈의 결과였다. 평소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는 신념으로 일의 시작과 기초를 중시한 고촌 이종근 회장은 종근당의 창업을 통해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들고 더 나아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참제약인이다.
1970년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환경에서 1980년 자체 기술로 세계에서 4번째로 항결핵제를 개발하여 치료의 혜택을 제공한 것과 향후 신약개발의 기반이 된 중앙연구소를 1972년 제약업계 최초로 설립한 일 등은 질병 없는 사회를 꿈꾼 참제약인의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진 창조적인 기업인

화학기술과 전문적인 기술 인력이 낙후되어 있고 경제성과 효용성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원료 합성공장을 완공하여 순수 우리 기술로 의약품을 자체 생산하여 국산화의 길을 열고 더 나아가 한국 제약기업으로는 최초로 일본 등에 수출함으로써 대단위 수출의 길을 연 성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선진기술이 필요한 제약산업의 세계진출은 그때까지 기술부족으로 부진하였던 우리 산업에 큰 자극이 되었다. 그 결과 첨단 기술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국내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보고 과감히 투자하여 수출을 통해 국내 제약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성과야말로 오늘날 모두가 열망하는 창조적인 기업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