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 결혼,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맘이자 고령엄마의 눈물겨운 분투기. 매주 금요일 문윤희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조리원에 들어가면 좀 편히 쉴 수 있겠지 했던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실제 조리원 생활은 무척 규칙적이었고, 아기를 맡겨 놓는다고 해서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도 않았다.

시간은 정말 빨리 흘렀는데 그 사이사이 성치 않은 몸을 치유하는 과정(좌욕, 임산부 마사지, 족욕 등)을 해야 했고, 막 출산을 한 후라 식사를 꼬박꼬박 세끼나 챙겨 먹어야 했으며, 젖을 물리기 위해 수유준비(통곡마사지, 유축기 마사지)를 해야 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나면 밥을 먹으라는 전화가 온다. 밥을 먹고 몬주에게 가서 수유를 시도하다가 방에 들어오면 좌욕을 해야 했고, 그 사이 간식이 방안으로 배달됐다. 간식을 챙겨 먹고 몰려오는 졸음에 잠을 자려고하면 유축기로 가슴 마사지를 하라는 알람이 울린다. 그리고 조금 후 점심. 이렇게 반나절이 훌쩍 가고 나면 오후에는 시간을 맘대로 쓰고 싶건만 그 놈의 산후 마사지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마사지를 받고 나서 족욕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얼추 3시 정도가 되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잘 수 있는 낮잠 타이밍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바로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온다. 그런데 나는 완모를 하고 싶다고 조리원에 말해 놨기에 몬주가 젖을 먹어야 할 시간에 매번 수유실에 가 있거나 몬주를 데리고 방에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일단 젖이 나오기 전까지는 낮잠도 자고 족욕이나 TV를 보면서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집에 가면 조리원 생활이 그리워 질 거라면서 푹 쉬라고 하셨다.

완모(완전한 모유수유)를 하려 했던 나는 그녀의 조언이 내키지 않았지만 잠을 자고 싶은 욕구 또한 강했기에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딱 이틀 정도 낮잠을 자고 나니 초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초유가 나온다는 것은 본격적인 수유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생아는 2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하는데 처음 몬주는 젖꼭지를 제대로 물지 못해 수유하는데 만 40~50분 이상이 걸렸다. 애를 써서 겨우 젖을 물리면 먹다가 지쳐 잠이 드는 일이 허다했고,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서 다시 깨는 일이 반복됐다. 이 과정이 모두 2시간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모유수유는 조리원에서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합을 마치는 과정을 일주일 정도 해내고 나서야 비로써 제대로 되기 시작했다. 몬주가 먹는 양이 엄마의 젖양에 비해 많았기에 나는 조리원에서 완모는 포기하고 유축기로 짜낸 젖을 보관해 가며 반은 분유로 반은 모유로 수유를 해나갔다.

완모를 포기하고 나니 2시간 간격으로 불려가던 수유실도 내가 먹이고 싶을 때(더 정확히는 충분히 모유가 모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가게 돼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조리원에 입소한 엄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들, 진정한 수다의 세계를 보여주다

조리원에 들어온 지 2주차에 접어들면서 나는 식사시간에 만나는 엄마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이 시간을 무척 즐겁게 여겼다. 곧 퇴소를 앞둔 사람과 오늘 입소한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리원에서 엄마들이 쏟아내는 정보는 정말 무궁무진했는데 특히 경산모(출산을 이미 경험한 산모를 뜻함)들이 주는 정보는 실로 유용했다.

수원에서 육아도우미 업체는 어디가 좋다던지, 기저귀는 어떤 사이트가 가장 싸게 판매한다던지, 육아용품 사이트는 어디가 좋다든지, 육아용품 중 중고로 사도 되는 것 등등 아기를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흘러 넘쳤다.

엄마들은 조금 말이 트이면 서로 나이나 사는 곳을 물어가며 하루 사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나이도 많거니와 굳이 조리원 동기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조용히 밥을 먹고 인사만 하거나 그들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정도로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게 조용하게 조리원 생활을 하는가 싶었는데 한 엄마의 호기심이 나를 조리원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 만들고 말았다. 그녀는 밥만 먹고 사라지는 내가 궁금했는지 어느 날은 작정하고 내 앞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그녀와 마주했는데 그녀는 앉자마자 내 나이와 사는 곳, 하는 일과 직장은 어디인지 등을 캐물으며 자신의 궁금증을 채워갔다. 나는 굳이 피하지 말고 대답하자는 생각에 그녀의 질문에 고분고분 답을 내주었다.

그녀는 내 늦은 출산과 몬주의 태명이 지어진 이유, 시험관 아기를 진행할 때 어려웠던 점들을 물어가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연주의 출산을 도전하고 몬주를 낳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용감하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그녀는 계획하지 않은 둘째를 낳았는데 첫째가 아들, 둘째가 딸이어서 기쁘다고 했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직장맘이었는데 복귀가 벌써부터 하기 싫다고 하소연했다. 그녀는 시댁과 친청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해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제는 둘째까지 낳았으니 정말 '헬'이라고 푸념하듯 웃었다.

그렇게 그녀와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조리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산모라는 것과 자연주의 출산을 한 유일한 산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에 대해 물었던 엄마는 나와 마주치지 않았던 시간에 다른 엄마들에게 흥미로운 뉴스를 전했던 것이다.

그날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처음 보는 엄마들이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더 이상 몬주의 태명을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몬주를 보며 "몬주야~"라고 친근하게 인사했다. 어떤 이는 "자연주의 출산을 해서 언니가 그렇게 아픈 티를 안냈구나"라며 대견한 듯 칭찬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리원에서 가장 '핫'한 엄마가 돼 있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