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 결혼,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맘이자 고령엄마의 눈물겨운 분투기. 매주 금요일 문윤희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출산과 관련해 나에게는 한 가지 로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주의 출산'이었다.

젊었을 때는 아기를 온전히 엄마의 힘으로 낳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은 도전이었겠지만 마흔을 훌쩍 넘기니 살짝 겁이 났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기를 낳을 때 내 나이는 해를 넘겨 마흔 넷이었는데도 자연주의 출산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난임병원을 다니며 아기에게 의도치 않게 많은 약물에 노출시켰다는 미안함이 컸던 게 자연주의 출산을 고집한 이유이기도 했다. 임신하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어 의료적 도움을 받았지만 아기를 낳는 것만큼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산할 때 엄마의 고통을 줄여주는 무통주사나 다른 의료적 도움도 될 수 있으면 받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아이에게 더 이상의 약물 접근을 막고 안전하게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의 한켠에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나는 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걷기를 오기 수준으로 한 것도 이런 마음이 한몫했다.

나는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집에서 가까운 출산병원을 찾아 첫 상담을 했을 때부터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담당 의사선생님은 "가능하다"는 말로 나의 의지에 화답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는 반가워하는 기색없이 늙은 산모의 의지를 그저 담담히 수락하는 정도의 표현으로 적당한 말을 찾아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의사 선생님의 "가능하다"는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다. 응원 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출산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나는 여러 연예인들이 수중분만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자연주의출산이 주는 기쁨을 상상해 보았다. 엄마가 출산에 따르는 진통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보다는 아기를 낳는 순간의 기쁨, 출생을 축하하는 장면과 그 분위기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연히 아기를 물속에서 낳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니는 병원은 감염의 우려가 있어 수중분만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아늑한 방에서 가족(아빠와 엄마)이 함께 출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아기를 온전히 엄마의 힘으로 낳는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임신 7개월이 되자 둘라(출산전문가)선생님이 배정돼 아기를 낳기까지 필요한 정보를 전해줬다. 카톡으로 날아오는 정보는 주로 자연주의 출산의 장점을 담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출산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좋은 자연주의 출산을 왜 많은 엄마들이 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라가 보내주는 자연주의출산 예찬 정보는 내게 출산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자연주의 출산이 내게 준 것

그런데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하면서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출산은 돌발 상황이 의도치 않게 많이 나타난다는 것. 나 역시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기는 잠 잘 준비는 하는 저녁 11시쯤 나올 준비가 됐다고 알렸다. 무려 출산 예정일보다 3주(정확히는 2주 5일)나 빨랐다. 마음의 준비 없이 시작된 진통은 23시간이나 지속됐는데 아기 머리가 보일 때까지 진통 간격은 8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 간격이 8분이라는 건 아기가 나올 수 있는 기회가 5분 간격인 아이에 비해 더 적다는 말이었다. 진통 간격이 좁혀지지 않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방 안 분위기는 점차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둘라선생님은 짧은 진통시간에 더 많은 힘을 주라고 나를 독려했다. 어느새 담당 의사 선생님도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남편이 "아기 머리가 보여"라고 말 한 뒤 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초조해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지금 힘을 더 주지 않으면 아기도 나도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진통이 막 끝나 다음 진통을 기다리는 순간에 의사선생님은 "이번에 나왔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운 듯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이 내 귀에 너무 크게 들렸다. 나는 진통이 막 끝났음에도 힘을 주기 시작했고 아기는 머리를 내놓은 다음 빠르게 내 몸을 빠져 나왔다.

유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처음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방안에 모두가 웃었다. 내 품에 유진이가 안기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다보는데 방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기가 막 나온 산도에서 꿀렁꿀렁 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핏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은 다급히 여러 약제를 말하며 간호사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링거 몇 개가 링거대에 걸렸고 내 팔에 주사 바늘이 꽂혔다. 선생님은 남편을 부르더니 "출혈이 너무 심해 대학병원으로 옮겨가야 할 수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몸에 한기가 들었다. 땅 속으로 푹 꺼지는 느낌도 들었다. 둘라선생님은 서둘러 이불과 담요를 가져와 켜켜이 내 몸에 둘렀다.

남편과 유진이가 바로 옆에 누워 있었는데 유진이를 더 안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 와중에 든 생각 “우리 딸 머리가 달걀형이야.” 나는 곧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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