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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사장은 새롭게 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하는 큰 뜻으로 기업 운영을 멈췄다.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에 접어들어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다짐했지만, 3년여의 공백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동화는 만주 분공장의 생산 설비와 북쪽의 영업 기반까지 잃은 상황이었다.윤 사장은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다시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인물열전
문윤희 기자
2014.01.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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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사장의 정도개혁으로 동화는 제2의 창업기를 마련한다. 하지만 당시 격변하는 국내외 상황 때문에 회사의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중일전쟁(1937)으로 전시체제령이 내려졌고, 통제가 심해져 국내 경제 사정 역시 어려워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이를 탈피할 길을 찾던 중 윤 사장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국외 시장이었다. 그중 동화약품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
인물열전
문윤희 기자
2013.12.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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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사장은 동화약품을 인수하기 전부터 민족 기업가로 장안에 명망이 높았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정미업으로 차근차근 자본을 모아 재력이 풍부했으며, 독립운동과 빈민구휼 사업을 펼치면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윤창식 사장은 이미 풍부한 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창업 40년을 맞은 애국 기업인 동화를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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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12.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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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당(保堂) 윤창식 사장은 1890년 2월 13일 경기도 고양(지금의 마포구 공덕동)에서 태어났다. 윤창식 사장의 집안 어른들은 병풍 그림인 책가도(冊架圖) 속에 집안의 평안을 비는 의미로 그려 넣은 병인 보평(保平)처럼 집안을 튼튼히 보존하면서 번영으로 이끌길 바라 윤창식 사장을 보당(保堂)이라 불렀다. 윤창식 사장의 아호인 보당(保堂)은 이러한 연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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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희 기자
2013.12.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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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와 믿음, 그 이상의 좋은 경영전략은 없다”윤용구 회장이 대외 인터뷰나 직원들이 모인 자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기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이 두 가지만큼 중요한 자산은 없다고 생각했고, 비약적으로 성장한 일동제약이 이것을 그대로 증명했다.실제로 윤 회장은 직원들의 복지에 관심이 컸다. 1969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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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희 기자
2013.11.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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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나민 매출이 급성장하자 당시 경쟁사들은 비싼 가격을 꼬투리 삼아 폄하하기도 했고, 유사 성분의 값싼 제품을 만들어 마치 아로나민과 대등한 제품인 양 광고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당국에 시정을 건의하고 진정서를 내자고 하기도 했지만 윤용구 회장은 “유사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차별화된 제품임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명예롭게 전진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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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11.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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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제약 도약의 시작, 비오비타와 아로나민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분단이 재촉되어 가며 혼란하고 불안한 사회분위기가 계속됐다. 당시 미국의 최신의약품들이 국내로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원료 구입이 어려워져 국내 제약사들은 큰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일동제약 창립 이래 몇 년간의 탄탄한 성장을 통해 직원의 수도 많이 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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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11.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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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구 회장은 충북 청원군 가덕면 수곡리 해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나 은반지, 은비녀 등을 만들어 파는 금은방을 운영했으나, 근검하고 절약정신이 투철하여 정작 가족들의 치장이나 씀씀이에는 엄격했다.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읜 윤 회장은 이러한 아버지의 성품을 이어 받았다.어머니의 부재라는 슬픔은 강한 자립심으로 승화되었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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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11.0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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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세를 확장하던 1980년 5년간의 연구 끝에 세계에서 4번째로 리팜피신 원료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항결핵제로 알려진 리팜피신은 그람양성균을 위시해 임균, 수막염균 등 그람음성균에도 강력한 항균력을 지니고 있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광범위 항생물질이다.1960년대 말부터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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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9.0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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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 이종근 회장은 창업 이래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보다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고 국민의 건강을 우리 힘으로 지키겠다는 사회적 책임을 꾸준히 실천해왔다.평소 “우리는 약을 만드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만든 약이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항상 있게 하는 사명을 지녀야 합니다.”라고 말하던 그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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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8.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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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근당의 창업주이자 한국제약계의 거목이었던 고촌 이종근 회장은 1919년 9월 9일 충남 당진에서 부친 이택기(李宅基) 공(公)과 모친 신택순(申宅順) 여사(女史)와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한일합방의 망국적인 슬픔과 가난을 몸소 체험하며 유년시절을 보낸 이종근 회장은 13세에 서울로 상경해 철공소 견습을 시작으로 쌀 배달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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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8.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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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척박했던 환경에서 빈농의 아들로 191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철공소 견습공, 전기상회 사동, 정미소 쌀 배달원을 거쳐 약품행상을 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명성을 가진 종근당을 창업한 고촌 이종근 회장은 검소, 검약을 생활철학으로 큰 제약기업을 일군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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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8.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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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라 불리기 원했던 유일한유일한은 교육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외국에 출장을 갈 때는 여권에 방문목적을 ‘교육사업’이라고 사용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의지는 투철했다.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으나 이를 개발해 주는 교육이 부실했기 때문에 근세 초에 식민지 지배라는 수모를 겪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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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희 기자
2013.06.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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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나이에 직접 참여한 조국의 독립운동1941년 12월 일본군이 진주만 폭격을 감행하자 미국의 본격적인 전쟁 참여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당시 국내 경영을 잠시 동생에게 맡기고 남가주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던 유일한은 미육군전략처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한국담당 고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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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희 기자
2013.06.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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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 봉사하기 위해 영구귀국을 결심유일한은 1925년 라초이 식품회사의 사업 용무로 중국과 동남아를 방문한 뒤 고국에 잠시 머물렀다.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식민지 지배 하의 민족의 실정을 보고 유일한은 조국을 위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당시 조국 동포들은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였고, 산업이 없으니 일자리도 부족했다. 특히 보건문제는 생존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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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희 기자
2013.05.2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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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문화를 동경한 아버지에 의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다.유일한은 1895년 1월 1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아버지 유기연(柳基淵)과 어머니 김기복(金基福)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기연은 여러 지방도시를 대상으로 상업을 하면서 생활해 온 상인이었다. 경북 예천 출신인 유기연은 평양에 정착하면서 농산물, 건어물상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서구로부터의 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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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5.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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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9일, 강중희 회장은 상호를 현재의 ‘동아제약주식회사(東亞製藥株式會社)’로 변경하고 법인체로 등록하며 제약회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2년 12월 ‘강중희 상점’을 개업한지 만 17년 만에 현대적 개념의 제약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6.25 전쟁과 위기 그리고 새로운 출발모든 일이 순탄치 만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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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5.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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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의약품도매상으로의 성장과 제약으로의 전환창업 초기에 가족단위로 출범했던 상점은 1936년부터 판매망을 확대하여 서울 외곽에 위치한 한국인 약방과 약국 대부분을 석권했다.판매망의 성공적인 확대는 ‘강중희 상점’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양약을 생산하던 국내 제약회사들이 거래를 제의해 왔을 뿐 아니라 일본의 제약회사들도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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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5.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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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필의 비단이 전부인 여비를 가진 청년 강중희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백방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이 때 운명적으로 그의 눈에 한 장의 벽보가 들어왔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약회사에서 외무판매원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강중희상점(姜重熙商店)’의 창업1930년 강중희 회장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약사에 입사했다. 수공업 형태의 작은 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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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4.2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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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굽힐 줄 모르는 집념 하나로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2012년 12월 1일, 창립80주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의 동아제약(現 동아쏘시오홀딩스)은 창업자인 故 강중희 회장이 1932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중희 상점’이라는 위생재료 도매상을 개업하면서부터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약업계의 첫 발을 내딛기까지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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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3.04.22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