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의정(醫政)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는 등 사회적 갈등과 환자 피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주장과 의사협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매일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더해지면서 논란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지금의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싼 논란의 현상과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 의대 입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한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한 면허정지 3개월 행정처분 절차를 이틀째 진행 중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보름을 넘기면서 전국 주요 병원들이 본격적인 ‘축소 운영’에 들어갔다.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로 진료·수술이 크게 줄면서 입원 환자가 급감한 탓이다. 운영 병상수를 대폭 줄인 것은 물론 ‘병동 통폐합’도 잇따르고 있다. 이를 바라보면서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1960년대 서울 신당동 빈촌에 ‘안창일 소아과’ 병원 안창일 병원장이 떠올랐다. 안창일 원장은 가톨릭의과대학 박사1호다. 병원이 없던 시절, 어느 날 몸이 불덩이 같은 어린아이를 안고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 넉넉해 보이지도 않았다. 안 원장은 어린아이의 열을 재고 진찰을 한 후 병(病)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몸을 시원하게 하고, 보리차를 자주 마시게 하라고 처방을 했다. 엄마가 안타까워하며 “약은 안주시나요?”라고 물었다. “병이 아니니 약을 먹일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해하던 엄마가 조심스럽게 “치료비는 얼마인가요?”라고 물었다. “치료한 일이 없으니 치료비를 어떻게 받겠습니까? 그냥 가세요.” 가난한 엄마는 굽실거리며 병원을 나갔다. 아마 그 엄마는 감사한 마음으로 안창일 원장이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을 것 같다. 엄마의 심정에서 그 엄마는 얼마나 감사했을까. 언젠가 신문에서 미담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그런 의사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2주 이상을 끌어온 ‘전공의 사태’를 걱정한다. 한국인에게는 의사는 돈과 연결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런 의사는 비싼 학자금에다 고생과 시간을 많이 투자한 만큼 부(富)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적으로 그들에게 인술(仁術)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풍족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경(死境)을 헤매는 그대의 가족이 응급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해도 지금의 마음으로 외면을 하고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이유가 어떠하든 지금 국민은 의사 편이 아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 2월 29일까지 의료 현장으로 조속히 복귀해달라고 전공의 복귀를 수차례 요청하며, 복귀한 전공의들은 정상을 참작하여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가 많다.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던 노동계와 진보 시민단체들까지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비난하며 등을 돌린 상태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대정부 투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등장해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지난달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 중앙회(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는 내용의 입장 문을 낸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3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 나서며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비대위는 이날 의사 2만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한다는 전략이지만, 정부는 행정처분과 사법적 처벌 등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으로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전공의들이 대거 처벌을 받더라도 함께 맞서줄 만한 외부 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통상 총선과 같은 정치적 이벤트를 앞둔 상태에서는 정부의 스탠스가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여야 지지층을 막론하고 의료계 집단행동에 반발하는 여론이 높은 상황이라 총선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의사들의 집단이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연세대 의대생들은 지난달 26일 졸업식장에서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고 소리 내어 선서했다. 의사의 양심과 의무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이다. 이제 곧 의사의 길로 접어들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가 되어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겠다는 다짐이며 의사라면 누구나 했을 선서다. 그렇게 똑같은 마음으로 선서를 했을 전공의들이 지금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환자를 팽개치고, 인질범처럼 생명을 담보로 거리로 뛰쳐나와 떼를 쓰고 있다. 선서문은 그저 생각 없이 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의무감에서 건성으로 읽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가운을 걸친 것 같은 의사들의 속내를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무슨 변명을 한다한들, 의사들은 밥그릇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은 환자의 목숨을 자기들 손에 쥔 즉 인간 생명을 무기로 가진 사람들이다. 응급 환자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부가 손을 들 줄 알았나보다. 얼마나 비열하고 졸렬한가.

세상에 생명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소방관이나 군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환자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사의 사명이자 직분이다. 그렇잖으면 의사로서 자격이 없는 거다. 타이태닉호의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이 다 탈출하는 것을 보고 마지막까지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세월호와는 전혀 다르지만, 지금 전공의들의 행동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같다. 역겨운 것은 마치 자신들을 박해받는 피해자처럼 여기는 것이다. 더욱이 전공의를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에 비유하기도 한다. 착각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라 해도 제 때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해 애태우는 중증 환자들이다.

또 의사들은 의대 증원이 정부의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의 76%가 찬성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의사들은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증원 결사반대’를 외쳤다. 정부 정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들과 ‘협의’가 아닌 ‘합의’를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의사 면허 공급을 의사들에게 맡기라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전문의는 10년 뒤에나 나온다. 과거 정부처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며 함께 기뻐하며 위로할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술(醫術)이 아닌 인술(仁術)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 땀을 뻘뻘 흘리며 검사를 했던 의사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동네 주변의 의사들은 대부분 ‘호인’이시다. 그러나 집단으로서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은 위급할 때 소방관처럼 몸을 내던질 줄 아는 의사를 존경한다. 환자의 곁에서 애를 태우며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의 참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라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사가 헌법에 반하는 사회적 특수 계급일 수는 없다. 의사들은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는 중증환자와 수술환자가 있는 병원에 달려가는 것이 의사의 도리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미. Creative University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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