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환자·녹십자에 조정 권유…판결시 파장 고려한 듯

"다음 변론 전까지 조정을 해봐라. 녹십자는 정책적 위험에 대한 내용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환자들도 판결 이후(배상 문제로 인한 파장)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혈우병환자 부모와 변호인단이 변론을 마치고 법원을 나가고 있다. 
27일 서울고등법원(민사 제9부, 판사 이진만 이승엽 노호성)에서 열린 녹십자홀딩스와 훽나인 사용 HIV 감염 환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양측의 조정을 권유했다.

그동안 6차례에 걸친 변론 준비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양측의 화해를 권고했던 법원이 판결 전 '조정'을 권유한 배경에는 판결 이후 양측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원은 "환자들은 10년에 걸친 법적 소송을 통해(대법원 판결 이후) 법적 보상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며 "녹십자측도 판결을 받았을 때 (결론에 대해)고려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녹십자가 이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해 봐야 한다"면서 "돈의 액수도 문제지만, 적절한 선에서 (양측이)적정한 신뢰와 명분을 나눠가져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이어 법원에 배석한 녹십자 관계자에게 "회사측에 법원이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전달하라"면서 "이 사건이 판결까지 갔을 때 미칠 영향을 경영적으로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어 "재판부의 이런 의견을 경영자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고인 환자들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도 소멸시효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원고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합의를 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법원은 다음 별론 기일인 11월 13일 전까지 양측의 조정이 완료되길 희망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법원의 이같은 주문에 환자측 변호인으로 나선 전현희 변호사(18대 국회의원)은 "피고와 협의의 여지는 있을 것 같다"고 호응했고 녹십자측 변호인단 역시 "회사측에 다시 한번 법원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날 변론에서 원고(환자)측 변호인단과 피고(녹십자홀딩스)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지적한 인과관계(훽나인 사용으로 인한 HIV감염 가능성)확인을 위한 증인 신청 문제, 소멸시효 완성 여부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전현희 변호사는 "10년전 사건을 맡았을 때 이 사건에 대해 역학조사를 벌였지만 그 수준이 환자에 대한 설문조사 정도 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들의 감염 인과관계 확인을 위해 서울대병원의 환자 치료 사실조치, 20년전 훽나인을 공급했던 환우회 회원의 어머니 증인 신청 등을 추가적으로 요청했다.

녹십자홀딩스측 변호인단은 식약청, 제약협회, 질병관리본부등 관련 기관의 사실조회 신청, 박종걸 최고열 등 교수 들의 증인심문을 신청했다.

정부, 녹십자 책임회피에 분노

이날 환자측 변호인으로 나선 전현희 변호사는 10여년에 걸친 소송에 대한 소회를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10년전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어느 누구도, 국가도 도와주지 않았다. 감염여부를 밝히는 역학조사 마저 설문조사 수준으로 그쳤다"면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는 조사 방식, 억울한 환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녹십자의 책임회피 등에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와 가족들의 DNA염기서열이 같다. 환자만 HIV에 감염됐다는 것이 이해가 될 수 있냐"면서 "비슷한 시기에 훽나인을 맞은 뒤부터 HIV감염이 됐다는 것은 그 사실자체만으로 인과관계가 입증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녹십자측에서 증인 채택 명단에 올린 한 교수에 대해서는 "녹십자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하는 교수"라고 지적하면서 "일반론적인 진술을 할 뿐 이번 사건과는 관련된 사람이 아니다. 증인으로 삼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전 변호사의 주장에 녹십자측 변호사은 "그건 변호인의 억측일 뿐,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라며 "대법원 판결에서 인과관계를 알아보라고 해 그에 대한 증인을 신청하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편 이날 재판장에는 대구에 거주하는 환우회 부모가 참석해 증언을 했다.

이 부모는 "환우회 어머니 대표가 서울에 가서 훽나인을 받아와 우리가 그약을 나눠서 아이들에게 투약했다"며 "그 약이 훽나인이 맞고, 환자 부모들도 모두 훽나인인 것을 알고 약을 투약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한번 양측에 '조정'을 권유한 법원의 주문에 녹십자와 환자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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