훽나인 사용 HIV 감염 환자 가족의 한숨

"약을 써서 HIV에 감염된 환자는 있는데,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 제약회사까지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너진 우리 아이들 인생에 대해 사과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혈우병환자 가족들이 전문지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20년 전 혈우병치료제 훽나인 사용으로 HIV에 감염됐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의 가족들이 억울한 사연을 밝히기 위해 언론 앞에 섰다.

가족의 일원이 혈우병 환자인 것도, 혈우병 투병중 HIV에 감염자가 됐다는 것도 사실 이들에겐 밝히기 힘든 '상처'이자 '원죄'다.

HIV감염 사실을 통보받고 쉬쉬하면서 지내다 다른 환자 가족들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HIV감염자가 자기 자식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환자 부모들이 모여 환우어머니회를 조직했고, 그 조직이 법정 투쟁을 준비하기 까지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들은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용기를 얻어 법적 소송을 시작했지만 두살, 세살, 다섯살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유년시절을 보내는 소년으로 성장했고,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또 한번 10년의 세월을 보내며 성인으로 성장했다.

HIV감염 사실을 안지 20여년이 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혈우병환자이며, HIV 감염자다.

이들은 또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 생활도, 직장생활, 이성 관계도 모두 '꿈'으로 간직해야 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마저 누리지 못한 채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환우가족들의 호소다.

자식들의 인생이 무너진 상황에서 더 이상 억울한 사연을 가슴에만 품고 싶지 않았다는 부모들은 "누구라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 환우 부보는 "처음 아이가 HIV에 감염됐다고 들었을 때는 죽은 자식 키우는 심정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살인을 해도 죽은 사람은 있는데 살인자가 없는 꼴"이라며 한탄했다.

이 부모는 "아이들은 사람이 누려야 할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장래가 없다"면서 "대법원 판결까지 났으면 해당 제약회사는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이라도 전해야 하지 않냐. 환자의 사정을 이용만 하려는 태도가 야속하기만 하다"며 서운해 했다.

다른 부모는 "이제는 HIV치료제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환각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며 "돈 오천, 천 만원으로 아이의 인생의 피해를 대신하려는 그들의 태도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 부모는 "적어도 아이들의 인생이 저렇게 됐으면 책임을 져주려는 태도와 사과,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소송에 나선 환자 부모들의 원래 목적은 제약회사와 정부를 형사 고발해 책임자 문책과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한 부모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후생성 장관이 사임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이지 얼마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손해배상에 초점이 기울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 부모는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인터뷰가 나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당한 환자들은 일생을 걸고 겪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없게 기사화 해달라. 전국민이 알고 경종을 울릴 수 있기 바란다."

10년에 걸친 법정 다툼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고법(일부 파기 환송)에서 진행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강력히 '조정'을 권고하고 있어 양측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회사는 정책적 부담을, 환자는 시효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이번 법정분쟁에서 환자들의 무너진 가슴이 진정한 사과로 보다듬어 질 수 있는 해피엔딩을 기대해 보는 거슨 너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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