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약가인하 기전들…제약업계 피로도 최고조

"이젠 빠져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다. 신약 가치 평가라도 제대로 해줘야 개발을 할 것 아닌가."

놀랍게도 이 발언은 다국적제약기업이 아닌 국내제약 임원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동안 약가인하 정책을 내면서 정부가 제약사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연구개발 없이 카피로 돈을 벌었으니 내놔라."

이런 메시지를 던지기 무색해진 환경이 도래했다. 지난해 국내 제약기업의 매출액 대비 평균 연구투자비 비율은 7%에 육박했다. 불과 10년전 평균 3%대에 불과하던 투자비율에 비하면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미약품과 셀트리온, LG생명과학 등은 일찌감치 매출액의 20%를 넘어선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회사 대열에 올랐고 녹십자, 종근당, 대웅제약, 일동제약, 유나이티드제약, 현대약품, 부광약품, 셀트리온제약, 비씨월드제약, CMG제약 등은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의약품 연구개발에 투자해서 '신약'을 만들어내자는 제약기업의 목표설정에 꾸준한 약가인하 정책으로 대응하는 정부 방침에 제약기업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이유다.

또다시 재연된 악몽, 약가인하

올해 정부는 '실거래가 약가인하'를 다시 꺼내들었다. 제약업계에서 나온 반응은 '1년유예'. 이 마저도 정부가 수긍할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반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누적된 약가인하 기전에 돌을 하나 더 얹는 행위를 그만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 3월 시행하겠다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역시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때문에 제약업계는 실거래가 약가인하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약가인하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들고 있지 않다는 점과 근거 공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근거한 약가인하 기전이 일부 불법거래 자료이거나 건보재정과 관련이 없는 자료일 것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자료 공개가 법에 저촉된다며 공개를 안하고 있는데 관련 법을 시행한다면서 법의 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분이 서질 않는다"며 비판했다.

정부가 파악한 내년 약가인하 규모는 2077억원대다. 내년 1월 관련 고시가 나오면 3월에 시행되는 이 제도에 제약협회와 다국적제약협회는 이례적으로 대응방안을 모색해 정부에 제안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의견 수렴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으로 절충안을 내놨다. 협의체를 통해 업계 애로사항과 요청안을 검토해 제도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제약협회와 다국적제약협회는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겠다는 방안이다.

제약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2012년 일괄인하로, 시장형실거래가제도로, 제약산업은 충분히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이번 제도 시행을 1년간 유예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복지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장관이 교체되고 국감이 진행되는 시기라 정부와 직접적인 대화는 지연되고 있으나 다각적인 채널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면서 "올 연말이 되기 전까지 정부와 논의를 전개해 해결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지속적 약가인하로 제약산업이 타격을 입으면 결국 의약품 연구와 개발,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제가 확대되면 국민건강권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에서 제약산업 육성 투자 정책을 내고 있다지만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을 해주던지 약가인하 기조를 중단하던지 해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고조되는 분위기, 소송으로 전개?

이번 약가인하 기전에 반발하는 기류는 국내외제약을 망라한다. 소송전이 전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다국적제약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은 타당성을 잃었다"면서 "의약품 가격 인하의 기본적인 틀을 벗어난 제도는 반발을 넘어 소송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 정부의 실거래가 약가인하제 발표 직후 다국적제약기업을 중심으로 소송전이 전개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한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의료기관 의약품 거래내역으로 가격인하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것이 타당한 기준인가. 약기안하 산출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저가공급되는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약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약가인하 폭은 우려했던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가 산정에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계획대로 관련 법을 진행한다면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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