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제약·정부에 주어진 선택과 결과

여러 제약전문가들이나 산업종사자, 심지어 제약업계 정책 관련 입안자까지 하는 말이지만 강력한 약가인하 규제 정책으로는 제네릭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이렇게 명확한 명제 속에서 한국에 존재하는 제약기업들이 살아가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앞서 강력한 약가인하 규제로 제네릭 시장 자체의 존재감이 사라진 일본의 동향을 보면 된다.

문제는, 정부의 약가인하정책이 과연 일본에서의 정책처럼 강력해 도저히 제네릭 산업의 생존 여부를 답보할 수 없을 정도의 여파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아직까지는 섣부른 추축이 될 수 있겠지만, 약제비 상승의 실질적인 요인을 배제하지 못한 현 정책으로는 약가인하 효과와 그로 인한 국내 제약산업의 존폐 위기를 말하는 것은 이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추진되는 의약품 약국외 판매, 건강식품으로 대표되는 의약품 대체상품의 확대, 제네릭제약사의 산업 다변화, FTA로 대변되는 다국적제약사의 시장 점유율 확대 등으로 인해 국내제네릭 산업은 저가의 제네릭 의약품 확대와 전략적 일부 품목의 시장 퇴출 전략,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일부 제품의 가격 인상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정책의 영향을 흡수한다

이미 여러차례의 약가인하 정책이 추진되면서 확인된 것이지만 약가인하 정책이 시행되면 될 수록 시장은 정책의 변화를 흡수하는 능력을 확장 또는 확대 시키며 위기 대응 능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다시 말해, 차후에 일어날 정책에 대비한 차선책까지 '전략적 방안'으로 만들 수 있는 내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정책을 흡수해 시장에서의 생존을 이어가면서 추진하는 국내제약산업의 대표적인 전략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구조조정이다. 내부 파이를 줄이고 외부 시장의 점유율을 늘릴 수 있도록 최소인원으로 풀 가동이 가능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

최근엔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대체인력 파견업체와 전략적으로 일부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 서비스 위탁 계약을 체결하며 실질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예고해, 이 회사 노조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실 영업인력 아웃소싱은 국내사들이 만지작 거리지만 꺼내들지 못하는 카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약산업 고용인력을 카드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내제약사들이 이 카드를 꺼내 들 경우 약가인하 정책에 반대하는 명분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핵심적인 수익을 내는 사업부를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방식도 제약사들이 가장 많이 취하는 전략 중 하나다. 될 성 부른 떡잎에 투자를 집중해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창출해 내도록 지원하는 방법과 이미 충분한 수익을 내는 곳에 집중 투자해 시장 자체 점유율을 잠식하는 방법이 이 영역에 포함된다.

반대로 제네릭 평균가 보다 낮은 저가의 제네릭을 생산해 시장의 파이를 흡수하는 전략도 내세울 수 있다. 이 방법은 현 정책 내에서 가능한 선에서 영업을 확대하며 고가의약품 처방 비중이 늘고 있는 일부 1,2차 의료기관에서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른 전략으로는 부분적으로 일정 부분의 품목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전략도 구사한다. 약가가 낮고 시장성도 적어 유지비용이 높은 품목을 과감히 생산을 중지해 일정부분의 손해 부분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의약품 신고방법이 변화되는 식약청의 정책 변화로 그 시효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많은 국내 제약기업이 꺼내든 또다른 생존전략 중 하나는 대체상품의 개발이다.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미용식품, 의약외품의 생산 확대는 의약품 관련 시장의 파이까지 흡수할 수 있고 '의약품 개발 업체'라는 신뢰도까지 얻어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밖에도 해외 진출 확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일부 품목의 공급가 인상, 슈퍼판매를 위한 전략적 제품 생산 등의 방법으로 산업 테투리 안밖의 파이를 확대하는 방법들을 취할 수 있다.

약가인하 정책, 근본적 변화가 필요

위에서 언급한 제약산업의 대응전략을 논하기에 앞서 짚어야 할 부분은 바로 정책에 있다.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를 위해 시작된 약가인하정책이 결국은 시장의 규제만으로는 통제가 안된다는 결과를 얻으면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험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가 해당 보험의약품에 대한 직접적인 비용부담을 하지 않는 현 상황, 그로 인해 고가약 사용에 대한 비용부담의 책임이 없다는 점은 약가인하정책에서 근본적으로 들여다 봐야 할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이런 정책의 영향 속에서 소비자는 의약품의 접근성 자체가 가로막혀 있어 의약품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점, 상품명 처방으로 인해 저가의 의약품 공급 기회 자체를 상실하게 된 점도 더불어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앞서 권혜영, 양봉민 교수는 '전문의약품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며 "약품비 절감을 위해서는 제네릭 약의 가격결정 구조 개선 뿐만 아니라 사용량 조정 정책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네릭 약의 가격인하 규제정책보다는 저렴한 제네릭 약이 오리지널 약을 대체할 수 있도록 의약품 선택 결정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현 상황에서 국내제약산업을 살리고, 건강보험재정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규제위주의 정책보다는 소비자 전문의약품 자율선택권과 같은 시장 구조의 변화와 의약품 처방에 대한 의약사간 선택권 분화 등이 검토 되어야 한다.

20년 전 강력했던 약가인하 정책의 결과는?

도입부분에서 언급했던 일본은 아이러니 하게도 강력한 약가인하 규제 정책의 영향으로 '저가의, 품질 좋은 제네릭'을 공급하려고 해도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정부가 20년 전 약가인하 정책을 펴며 '제네릭'에 대한 불신을 심어 넣으며 오리지널을 선호게 만든 영향 탓이다. 이런 경향은 의사와 약사 등 일부 의료관계자들에게도 뿌리깊게 박혀 있어 인식을 개선하는데 따른 정책 비용이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 정부는 '후발의약품(제네릭)의 안심 사용 촉진 프로그램(2007년)'을 발표하며 제네릭의 시장 점유율을 시장의 30%까지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책 추진 상황은 미미하다.

일본 소비자를 대상으로 후생성이 저가 의약품 공급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의사나 약사의 충분한 설명과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후발의약품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환자는 22%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본 후생성은 2010년 의료법을 개정하며 의료기관의 약제 부문에서 후발의약품의 사용 촉진을 위한 제도 정비를 다시금 강화시켰다. 이에따라 1~3차 의료기관에서 후발의약품의 채용 품목 수 비율을 20% 이상으로 올린 곳은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저가의 제네릭 공급을 위해 2009년 10월 13일 부터 FDA 사이트에 '제네릭 의약품에 관한 사실과 오해'라는 제목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오리지널과 똑같은 약효와 성분'을 가진 제네릭의 시장 경쟁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던 국가들의 현실과 20년 뒤 뒤늦게 그 길에 뛰어든 한국의 현 상황이 우려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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