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귀뚜라미 소리인 줄 알았더니 매미소리다. 시골 고향마을에서나 들을 성싶은 매미소리가 철근 콘크리트 숲으로 우거진 서울에서 들린다. 엊그제까지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폭염이 지속되면서 서울 도심지에서 매미들이 제철을 만난 듯 울어대기 시작한다.

도심지의 여름 허공을 가르는 매미소리는 대부분 말매미 소리다. 이들 매미들은 서로 뒤질세라 시끄럽게 울어댄다. 아예 ‘맴맴맴 매애’ 하며 합창을 한다. 말복에 이어 입추가 지나갔지만 열대야가 계속되는 한 매미들의 합창은 당분간 귀찮아도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매미들의 합창 때문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름 한철 딱 2주 남짓한 생(生)을 위해 5년, 7년 길게는 17년을 기다려온 매미의 삶을 생각하면 짜증을 낼 수만은 없다. 나뭇가지 틈새에서 부화한 뒤 애벌레가 되면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매미는 나무 수액만 빨아먹으며 오랜 시간을 허물벗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세상에 나오지만 그 삶은 딱 보름정도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매미의 삶을 보면서 다섯가지 덕(五德)을 가진 선비와 비교했다. 매미의 입은 글(文)에 뜻을 가진 선비의 갓끈처럼 곧으며,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廉恥)가 있다. 또 집이 없으니 검소(儉素)하고, 죽을 때를 아는 신의(信義)가 있고, 이슬만 먹고 사니 맑다(淸)는 것이다.

조선 영조 때 호조서리를 지낸 김수팽은 ‘전설의 아전’이다.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대죄를 청했다. 그는 “죽을 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달라”고 간청하니 판서가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또 김수팽이 숙직하던 밤,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금을 요청했다. 이때도 그는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아서야 돈을 내주었다.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관이 사형에 처할 일이라고 엄포를 놓았으나 영조는 오히려 김수팽의 행위를 기특히 여겼다.

이수광이 지은 ‘조선의 방외지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수팽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염색업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는 아우의 말에 김수팽은 염료통을 모두 엎어버렸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데 부업까지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 이 같은 김수팽의 질타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 있다. 조선의 관료들은 ‘사불삼거(四不三拒)’를 불문율로 삼았던 것이다.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는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경조사의 부조다.

청송부사 정붕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 필을 보낸 지방관을 크게 꾸짖고 벌을 주었다고 한다. 풍기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 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산 것을 알고는 곧바로 사표를 냈다. 또 대제학 김유는 지붕 처마 몇 치도 못늘리게 했다.

누구나 과거를 돌아볼 줄은 안다.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되짚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당명까지 바꾸면서 혁신을 강조하며 19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정치인들 여전히 사불삼거의 전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오직 사필(四必)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면제’ ‘논문표절’의 네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정치권에 진입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싶다. 또 세상에 잘못이 드러난 경우에도 권력자들은 어영부영 넘어가는 모습을 곧잘 본다. 힘에 밀리는 자는 제재를 받고 힘깨나 있으면 은근슬쩍 넘어간다.

한 술 더 떠 범법자가 되었다가도 ‘사면’이란 이름으로 특혜를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마약같은 정치에 스스로를 빠뜨리려고 안달인가 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사필(四必)을 갖추어야 정사를 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필귀정(四必歸正)으로 바뀐 것인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나라가 심각한 망각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자체가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다. 정치권에서는 그런 망각 증세를 보이는 국민에게 ‘사면’이라는 마취제까지 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리 권력자, 종북(從北)자들까지도 사면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다. 범인(凡人)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데도 국민은 덤덤하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그들을 위해 열광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보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직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사불삼거(四不三拒)의 불문율, 과연 현대판 김수팽 같은 정치인을 찾을 수 없고 그런 생각을 갖는 게 고리타분한 것일까.

처량한 매미소리를 들으며 더욱 더 서글픈 마음이 폭염과 함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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