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이 범하는 죄 중에서 가장 무섭고 독하고 악하고 고질적인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교만(驕慢)이라고 할 수 있다. 교만은 계명의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이나 거짓말이나 그 어떤 탐심보다도 더 지독한 악이다. 굳이 종교를 들지 않아도 인간은 교만함 때문에 타락하고 자멸하는 것이다.

교만은 온갖 악을 불러오는 악마적인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그 무서운 교만은 자기보다 더 나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교만은 그래서 끝없는 경쟁력에 불을 붙인다. 그래서 자기 자신보다 더 잘났거나, 더 높아졌거나, 더 화려하거나, 더 나은 그 무엇도 인정하기를 꺼려한다.

이와는 달리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부족하거나, 더 약해 보이거나, 더 안쓰러운 모습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갖는 대신에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아예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깔보려는 악(惡)이 마음 속에서 발동을 하게 된다.

인간을 교만하게 만드는 뿌리는 끝없는 비교의식이다. 그래서 우월감에 젖어 살고 경쟁심을 불태우며 자기교만과 자기만족의 감옥에 깊이 빠져 감옥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행여 겸손함으로 자기를 한껏 낮추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자기를 가리는 변장이요, 위장술에 불과할 뿐이다. 여전히 그 가면의 뒤에는 교만한 자아가 꽉 들어차 있다. 이 같은 교만은 항상 사람을 적대감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묘한 힘으로 작용한다.

누구든지 그런 교만에 빠지게 되면 우쭐하게 되고 자기가 남들보다 뭐 대단히 더 나은 사람인 줄로 착각하며 남을 무시하는 못된 마음을 갖게 된다. 결국 그런 교만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매사에 가면을 쓰고 행동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영국과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한 학자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O.S 루이스(Olive Stapless Lewis)가 정의한 일곱가지 악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교만’이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교만’ ‘시기’ ‘분노’ ‘호색’ ‘탐식’ ‘게으름’ ‘탐욕’이 인간을 대표하는 악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그런 교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 자랑거리가 많아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승리를 했다던지, 병에서 고침을 받았던지, 사업에 성공을 했다던지, 부유해졌을 때 어리석은 자들에게 찾아오는 악이 교만이다. 자랑거리가 많아질수록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해지는데 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교만해져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교만해진 사람들의 특징은 어느 누구의 충언도 듣지 않고 자만심으로 상대를 얕보며 화를 내고 걸핏하면 다툼만 일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교만은 참으로 어리석은 악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이 교만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강한 힘이 그를 악의 늪에서 건져주어야 한다. 그 힘의 원천은 겸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악한 교만의 늪에 빠져 있는 인간들은 여전히 그 악의 늪에서 권력과 탐심과 지위와 재물과 명예와 인기의 가면에 가려진 채 자기교만을 즐기려 하고 있다. 결국 교만은 허영심에 갇혀 마비된 모습으로 남들의 박수갈채와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달콤한 말과 자신을 인정해주고 띄워주는 거짓말의 늪에 빠져서 멸망하는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의 왕국을 건설해 나가려고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교만이 될 수 있는 자랑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쌓은 공덕과 선(善)은 아침이슬처럼 한 순간에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노력만 한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고 지탱할 수 있는 힘은 따로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공기를 평생 들여마시며 생명을 유진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한 나라를 건국하고 수십년을 통치하고 주변 국가를 공략하고 세계적인 항만과 공항을 건설하고 고속도로와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경제 대국으로 만든 그 어떤 통치자라도,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나, 종교의 수장이나, 거대한 기업의 회장이나, 어느 한 분야의 학문에 능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그 지위의 가면에 가려져 교만에 빠져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해 10월 리비아를 42년간이나 통치하던 독재자 카다피가 고향 마을 하수구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나친 자기교만 때문에 그는 그렇게 비참한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요즘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대선 예비주자들이 ‘나도’가 아닌 ‘나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이 대통령감으로 적격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인(世人)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 교수다.

안철수 교수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을 시장으로 만들어준 공신의 한 사람이다. 그 후의 과정이 어떠했든 그 힘이 무척 크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런 여파를 등에 업고 안 교수가 유권자의 지지도를 관망하면서 대선판을 넘보고 있다. 아주 고단수로 머리를 쓰고 있다.

어떤 제품에 대해 완전하게 알리기 보다는 감질 날 정도로 조금씩 공개함으로써 관심과 흥미를 극대화하고 언론을 잘 이용하려는 기법을 쓰고 있다. 흔히 이를 두고 티저(teaser) 광고라고도 말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안하무인의 오만함도 보이는 일면도 있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업적을 한올 한올 벗겨 드러내며 그에 따른 사람(유권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바람에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의 영향을 느끼면서 말이다. 안 교수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안철수 생각’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까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분명 누가 보아도 그 책은 사실상 대선 공약집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는 그 책 한 권에 정세 인식과 천안함, 제주 강정마을, FTA, 재벌, 원전 등 민감한 이슈 등 정책 대안들을 모두 담아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던진 것이다. 물론 국민들 입장에선 나쁠 것도 없다. 여야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새로운 정책 대안이 추가로 제시되면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과 끈기는 가히 칭찬하고 인정할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그 어느 자리보다 중요한 대통령 자리 선택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려하는 것은 위선이고 교만이며 어찌보면 국민을 희롱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당선 되려는 얄팍한 수법은 버려야 한다. 정치는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 자리가 그렇다.

이 나라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도 과거 경제 전문가인 기업주 출신이였음을 잊었는가. 공부처럼 정치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눈치만 보며 어린아이 오줌 지리듯 찔끔 찔끔 자신을 내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국민들로부터 부인 서울대 교수 임명 절차부터 사업경영에 이르는 모든 것을 검증 받아야 한다.

또한 지난 4.11 총선 때의 모습과는 달리 여야 국회의원들의 달라진 태도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야당의 대표급 의원들의 발언은 국민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생각된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그런데 누구보다 더 법을 지켜야 할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특혜를 이용, 법 집행을 거부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다.

자신이 떳떳하다면 스스로 검찰에 출두, 사실을 밝히면 되는 게 아닌가. 애꿎은 검찰을 비난하며 법망을 벗어나려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마음을 바꾸고 겸손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 같은 간절한 마음은 잘못된 지도자가 뽑히면서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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