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계속적인 설득에 아담은 눈을 껌뻑거렸다. 맞아. 내가 창씨작명한 건 없지. 뱀이 나 이전에 이미 뱀이었듯 만물의 이름도 이미 있었었지.

“거 봐요. 내 말이 맞죠? 지금의 세상은 하느님이 사랑으로 재구성하신 거예요.”

“그래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 그러면서 아담은 연습 삼아 드라이버를 휘둘렀는데 공이 맞아 생크가 났다. 아담은 곧 그런 의심 따위는 그만하기로 했다. 내일이나 나중에 하느님을 만나면 물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골프나 하자하고 궁금함을 털어 버렸다.

공이 굴러가 있는 쪽을 보던 아담은 눈을 돌려 코스 전체를 보았다. 러프 넘어는 가시덤불이거나 정글 같은 숲이었다. 슬라이스나 훅이 나면 찾으러 갈 수도 없을 거 같았다. 어떡하지? 볼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런 식이라면 불안해서 어떻게 18홀을 돈단 말인가. 아니지. 그뿐이 아니지. 이렇게 부끄럽고 마음졸이는 모습을 하느님이나 하와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

헤저드 옆으로는 OB 지역을 알리는 흰 말뚝도 박혀 있었다. 그곳은 염라대왕과 반인반수들의 놀이공원이었다. 아담의 신경은 완전히 곤두섰다. 무엇보다 벌거벗은 초라한 모습이 부끄러워 오들오들 떨기까지 했다. 뱀이 말했다.

“이걸 마셔 봐요. 그럼 진정이 될 거에요.” 뱀은 아담에게 족쇄를 채우듯 애플사이다 한 잔을 건네 주었다. 아담은 단숨에 마시고 잔을 돌려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자 골프는 이제 한결 재미있어 졌어요. 그럼 게임을 시작할까요? 내기 수위를 올려보죠. 이제껏은 발만 씻겨주었으나 오늘은 전신의 때를 밀어 주기로 말이죠. 피부를 문질러 보세요. 때가 많이 낀 것도 이젠 보이죠?”

뱀이 일깨워주자 아담은 피부를 문질러 보았다. 과연 여기 저기서 시커먼 때가 톱밥처럼 밀렸다. 아담은 정신이 바싹 들었다. 이렇게나 나 자신에게 무지했었다니…. “좋아 전신 때 밀어주기를 하지.”

아담은 볼 앞에 어드레스하면서 워터해저드나 벙커, 그리고 러프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해 스윙했다. 그러나 그의 드라이브는 여지없는 슬라이스가 되어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뱀은 겅중겅중 뛰면서 좋아했다.

“아아, 하나 뿐인 볼이 물에 들어갔으니 어떻게 계속하지?” 아담이 난색을 보이자 뱀은 여러 개의 공을 보여 주었다.

“걱정 말아요. 이런 때를 대비해서, 볼을 여러 개 준비했으니까.”

“이렇게 세심할 수가…” 아담은 뱀의 친절과 준비성에 감동했다.

“당신은 보기보다 준비성이 강하고 좋은 친구군.” 아담은 뱀을 거듭 칭찬했다.

[소설가(小說家). 다인(茶人). 여행가(旅行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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