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수요일만 되면 늘 그랬듯이 목요칼럼을 준비하기 위해서 몇 시간에 걸쳐 고민을 한다.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그만큼 이 사회가 혼돈의 사회가 되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로 써야 할 지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밑 ‘교수신문’ 이 선정한 올 사자성어 ‘엄이도종(掩耳盜鐘)’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종을 훔치려한 도둑이 종이 너무 커서 깨서 가져가려다 소리가 너무 커 자기 귀를 막았다는 춘추 시대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자기가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아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정권 실세를 중심으로 한 측근비리나 여야를 막론하고 금품 살포 등의 논란에 국민들의 따가운 비난이 쏟아지자 대기업 때리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들의 불평. 불만이 쌓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그 공격대상을 재벌로 넘기면서 정치권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술책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로마의 네로황제가 시민들의 불평 분노를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그들을 죽이며 위안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안철수 바람이 불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하고 선거가 임박해진 시점에 정치권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일부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남에게 돌리기 위한 ‘히스테리’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이 통합민주당에 이어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을 바꾸면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통 보수주의 정당에서 진보에 가까운 정당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한나라당이 무엇인가 착각을 해도 심하게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한나라당은 국민여론, 표를 얻기 위해 정당정책을 바꾸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앞으로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여야가 새로운 각오로 출발을 하겠다며 당의 이름을 바꾸고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모두 가상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너무 즉흥적이고 너무 서두는 감이 없지 않다. 하는 짓을 보면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경청했는지 의심스럽다. 리모델링해서 새 집으로 만들면 무엇 하나 그 안에 악취가 나는 쓰레기들이 잔뜩 있는데....

이런 발상이라면 불과 몇 년 후 국민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또 다른 당명으로 바꾸고 또 다른 정치 쇄신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다. 보수정당이 실제로는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도 지금까지는 대결구도가 선진국형의 보수와 진보가 맞아 떨어졌다.

경제발전 세력은 보수로, 민주세력은 진보로 진화했다. 그래서 보수 측은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중요시해왔고 진보 측은 전체적인 평등과 무상복지, 분배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 지금 304050세대들을 의식 진보 쪽이 유리해 보여서 일지 모르지만 정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일례로 과거 노무현 정권은 확실한 진보 정당이었지만 국민들은 자신이 지지했던 진보정권에 등을 돌리고 500만이라는 최대표 차이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진보 정권이 주도하다보면 경제성장을 무시하고 분배를 더 하자는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고, 보수가 주도하다보면 성장에 매달리는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마치 경쟁을 하듯 대기업을 공격대상으로 국민 분노의 화살을 돌리며 자신들의 실책은 교묘히 감추려고 한다. 과거 독재자들이 스포츠 쪽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놓고 정치에 관심을 끊도록 했듯이 이런 현상은 정치권의 재벌단속이 표심을 의식한 일시적 바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선거가 끝나면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권자인 국민들이 이번만큼은 정치권에 휘말려 ‘우(憂)’를 범해서는 안 된다.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지만 한나라당이 미리미리 절제를 했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무조건 밀어붙인 결과가 오늘의 민심이박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제 와서 이 대통령을 탄핵하며 한나라당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 할 수는 없다. 정당 이름을 바꾼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더욱 더 아니고 달라질 것도 없다. 재벌들 역시 ‘나눔’과 ‘절제’의 미덕을 보였다면 동네 골목 상권까지 넘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비난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정당은 정권교체로 권력을 잃게 되고 재벌은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 엄격한 견제를 받게 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무상복지,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인기가 있다고 보수정당까지 ‘좌’로 하면 ‘성장’이 필요한 때가 될 때 과연 어느 정당이 이를 대변할 것인가. 그 때 가서 또 정당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면 된다? 한나라당은 근시한적인 정책강령으로 현재도 놓치고, 미래도 놓치고 만다.

현재 분위기는 진보측이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진보 측이 더 유리하게 보이겠지만 반대의 물결이 거세질 때는 진짜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 정당에서 정권을 잡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한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집고 넘어갈 것은 우리나라의 체제를 거부하는 친북좌파, 종북 세력을 제외하고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총선이 두어 달 남짓 남았다. 유권자인 우리는 내 한 표가 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투표 직전 심각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혼란의 시대가 아니라 혼돈의 시대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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