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회가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이유는 어쩜 그 역사를 통해 과거의 실패와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는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사극(史劇)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드라마의 줄거리가 하나같이 권모술수와 밀실에서의 음모로 무자비하게 정적(政敵)을 쓰러뜨리고 정권을 탈취하는 등 한 번 잡은 정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위 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 탤런트들이 음모와 술수를 쓸 때 출중한 연기를 펼치다보니 이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예외 없이 전개되는 상황과는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 속에 빠져들고 만다는 것이다.

이를 보듯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분별하는데 이런 기 환상 속에서 투표를 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 역사 속의 선비들은 소수의 정략적인 이들을 제외하고는 지조를 지닌 선비정신으로 청렴결백하게 살아왔다. 그 같은 역사는 정사(正史)속에 무궁무진하게 감추어져 있다. 정사를 밀어내고 야사(野史)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우’ 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와 권력투쟁 역시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 정권 시대의 무정부 상태를 연상케 한다. 이제는 좌파세력이 자신이 좌파임을 떳떳하게 밝히는 걷잡을 수 없는 암담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술수(術數)가 정도(正道)처럼 인식되고 개집 짓듯 필요할 때마다 헤쳐 모여 식 ‘당’ 만들기와 직권남용은 능력으로 평가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더욱 개탄 할 일은 자신의 작은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대의와 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심지어는 남에게 잘못을 떼 넘기려는 못된 근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과거나 현실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권모술수가 있는 정치인 것 같다.

과거 정치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정치를 해왔느냐는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는데 매우 중요한 거울이 될 것 같다. 가깝게는 70년대. 멀리는 조선, 고려 등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보여 준 정치 형태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답습되고 있기에 어쩜 그보다 더 심하게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당파싸움으로 대부분의 회기를 낭비하는 등 국민의 혈세를 축내면서도 대립은 전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작 의정을 다루어야 할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폭력이 난무하고 시정잡배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형태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것도 부족해 일부 지도자의 탐욕으로 동서가 나눠지고 지역 계층 간에도 불화를 조성케 해 국민상호간에도 대립의 형태에서 합리적인 사고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어찌 되든 간에 내 이권만 챙기려하는 게 오늘 날 정치인의 행태다. 그런 사고로 있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자신과 함께 생각하고 뜻이 맞고 행동을 같이하면 동지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적(敵)으로 간주하고 곧 바로 제거를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부끄럽지만 그게 우리의 정치사다.

일제에서 해방 된지 60여년이 넘어 많은 것들이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국민들이 불운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 같이 대통령을 지낸 분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 존경 할 만 한 분이 없다. 그나마 이승만.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역사를 지켜본 정치인들의 최근 행태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분노가 치솟는 감정을 어떻게 억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치욕스러울 정도의 추태까지 보여 가며, 철새처럼 당을 바꿔가며 저토록 자리에 연연하고 싶을 까하는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한다. 국가를 위한, 국민을 위한 정책보다는 자신들의 계보에 의해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 좋고 비극이다.

물론 생존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경쟁은 당연하겠지만 남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여. 야가 대표를 선출하고 선거체제로 돌입하면서 이 같이 상호비방하고 서로 헐뜯는 따위의 정치인들의 작태는 우리 가슴을 더욱 아프게만 하고 있다. 옛 말 에 이르기를 “나라에 올바른 한 사람의 인물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충고하고 있다.

당명을 바꾸는 것도, 정책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정치인들이 아집과 권위를 버리고 국민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곧 다가올 총선에서 우려되는 것은 사극에서 단지 악역을 맡은 유명인기 연예인을 보고 ‘악’(惡 )보다는 연기 인물에 빠지는 것처럼 잘 못 판단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연일까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 새 대표로,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에, 거기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심상정. 공동대표까지 정국이 가히 여인천하가 됐다. 이들 중 누가 남성 국왕들이 감히 이루어내지 못한 어젠다를 제시하고 중화까지도 진압하기위해 9층탑을 쌓았던 선덕여왕의 개혁을 21세기 한국 사회에 재연 할 수 있을지 자못 설렌다.

선덕여왕은 주변국 왕들도 꿈꾸지 못했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폐출당한 진지왕의 손자 김춘추와 소외받던 가야 계 김유신 같은 비주류를 전격적으로 발탁했다. 고구려. 백제 틈바구니에서 생존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녀가 등용했던 김춘추. 김유신이란 두 비주류가 하나가 되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 했던 역사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 같다.

내 한 표가 국가의 존재를 좌우한다는 것을 바로 알자. 한 가지 더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이며 반공국가 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휴전 국이다. 아직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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