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각박해지는 세태와는 달리 구세군 자선냄비에 역대 최고액인 47억 원이 모금 됐다. 이는 지난해 42억1500만원에 비해 5억 원이나 증가 된 모금액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위에는 기부 천사로 불리는 가수 김장훈 씨나 얼마 전 고인이 된 김우수 씨처럼 불우한 이웃에게 따뜻한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같은 미담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빈곤층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모두가 힘겹게 일하고 변변하게 먹지도 못하면서 모은 돈을 자신들 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선뜻 내어 놓는다. 생색도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며 큰 소리 치던 사람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 학식이 많은 지식인들, 모두가 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인기척 조차도 없을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기부문화가 발달하고 정착되어지려면 적든 많든 고정 수입이 있는 중산층이 중심이 되어 나서야 한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빈곤층 할머니나 장애자, 심지어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미담 주인공으로 기사화 되는 것을 보면 정말 생각할수록 부끄럽기만 하다.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베풀고 나눔에는 아주 인색하고 무관심한 자들이 나이 어린 문근영이 남몰래 선행을 베푼 것에 대해 악플을 단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소유를 적은 ‘행복 나눔’과 ‘사랑 실천’의 대열에 동참하면 어떤 기분이 될 수 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안타까운 것은 프랑스나 미국처럼 부자가 거액을 기부금으로 내놓고 장기적인 자선 활동을 했다는 기사를 별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몇 해 전 현직 대통령이 유일하게 전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출현해 그나마도 위안을 삼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고귀한 신분’ ‘책임이 있다’라는 뜻이 담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ce)를 실천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인데 이 나라 상류층은 지금도 부(富)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는 오랜 기독교적인 전통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더 해져서 생겨 난 아주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같은 기부문화의 역사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과거 유럽 귀족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기부문화가 미국의 전유물로 여길 만큼 정착되었다. 그 대표적인 기부자들이 철강왕 카네기를 비롯, 록펠러, 그리고 위렌 버핏, 조지 소로스 등의 기업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미국 기부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강왕 카네기는 “부자의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 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활발한 자선 활동을 펼치며 ‘명예로운 전당’에 ‘위대한 기부자’ 라는 이름이 올라있을 정도다. 우리도 외국처럼 부자들이 사회봉사단체를 더 많이 설립, 기부의 새로운 참모습을 보여주면서 빈곤층인 저들이 평생 모은 재산은 자신들의 안락한 노후 생활을 위해 마음 놓고 쓰게 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도박이나 게임처럼 기부봉사도 맛들이면 그 나름대로의 별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눔뿐이다. 기부행위는 이웃 정신이 사라진 차디찬 이 시대에 뜨겁게 불을 붙여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베풂과 나눔은 부(富)의 역동적 선(先)순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 그 이유는 베풂만큼 유익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설령 그 돌아옴이 물질 자체가 아니더라도 베푼 이의 마음에 깃드는 정신적인 여유로움과 영적인 상쾌함은 물질로도 환산 할 수 없는 축복이다. 이런 베푼 자의 행복감은 그의 삶에 공간을 은혜가 넘치는 아름다운 정원(庭園)으로 만드는 것이다.

날로 각박해지는 삶일지라도 이웃 사랑의 실천이 무엇보다 더욱 절실한 때다. “기부하는 자체가 행복이자 에너지원”이다. 그래서 구제는 행복한 투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후회 없는 삶, 좋은 것의 소중함은 지금 뼈아픈 대가를 치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참 기쁨이기도 하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경제가 어려워짐에도 불구하고 기부액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1999년 29.3%에 불과했던 개인 기부비중이 10년 만에 64%로 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기간 기부금은 2조9000억 원에서 9조600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

누가 뭐라 해도 기부를 통한 나눔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제도와 인프라 정비를 통해 나눔 문화를 더욱 확산 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이 당정 협의회에서 마련한 나눔 활성화 방안이 반가운 것도 그래서 그렇다. 우선 현금, 부동산 등 거액의 자산을 기부할 경우 내년부터는 본인이나 유족에게 30~50% 범위 내에서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기부연금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기부 활성화에 기여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재산을 기부하고 싶어도 노후 생활이 불안해 기부를 망설이든 부유층의 참여를 늘릴 수 있어 일단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 다만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공익법인들이 높은 연금 율을 내세워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거나 그로 인해 기금이 부실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이참에 장기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나눔 정신을 확산 할 수 있는 나눔 교육 강화도 한 번 쯤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라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규 학교 교육 과정에 인성교육과 함께 배려와 나눔을 배울 수 있도록 관련 교과서와 프로그램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제 60년 만에 돌아오는 용의 해인 임진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이번 당정협의에서 마련한 조치들이 나눔 문화 확산의 디딤돌이 되는 따뜻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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