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프클럽은 간단하게 설계된 파 36의 18홀(그 중 4홀은 중복) 코스였다. 아담은 매일 하느님과 더불어 에덴CC에서 골프를 즐겼다.

작대기 하나와 볼 한 개면 족한 골프였다. 퍼팅 그린이 바로 다음 홀 티 그라운드여서 홀컵 옆에서 티샷을 했다.(이것은 스코틀랜드에 내려오는 세계 최초의 골프 룰 제1조 ‘플레이어는 홀에서 한 클럽 이내의 장소에서 티 위치를 정해야 한다’와 같다.)

숫자 개념이 없던 창세기라 스코어를 따지지 않는 골프라 규칙이 필요치 않았다. 하느님은 한 가지 규칙만을 아담에게 일러주었다. 일요일에는 절대 골프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요일은 안식의 날이니 골프채를 놓고 하와와 함께 쉬는 날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아담이 너무 구멍 넣기를 좋아하여 최초로 골프 과부가 되어버린 하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었다.

한편, 천지가 창조되면서 빛과 그림자가 나뉠 때 지옥도 생겼다. 가장 오래된 종교적 문헌인 인도의 ‘리그베다(聖歌經典)’에서는 최초의 인간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그 곳의 신이 된 야마천이 불교에 받아들여져 지옥의 왕이 되었다고 했다.

지옥의 왕이 된 야마천은 이름도 염라로 바꾸었다. 바라타족의 전쟁을 읊은 대사시 ‘마하바라타’에 따르면 염라는 피처럼 붉은 옷을 입고 왕관을 썼으며 물소를 타고 한 손으로는 곤봉을, 다른 손으로는 올가미를 잡고 있다.

올가미는 죽은 이의 영혼을 묶는 포승줄이고, 곤봉은 정의로운 판정을 하는 무기이다.

네 개의 눈이 달린 개 두 마리가 끄는 병(病)이라는 마차를 이용하며 저승사자를 시켜 죽은 생명의 영혼을 데려 오는데, 저승사자는 검은 망토에 눈이 붉고, 머리털은 곤두섰으며 코는 까마귀 부리와 비슷하다고 했다.

플라톤은 그의 책 ‘향연’에서 태초에 남성과 여성 외에 제3의 성이 - 양성? 혹은 반인반수? - 있었다고 했다.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기 전 자신의 형상 일부만을 응용한 반인반수를 여러 종 만들었던 것을 가정하는 말로 보인다.

물고기와 새를 만드신 제5일에 머리는 사람 모양인 날개 달린 동물과 인어를 만들었고, 지상의 동물을 만드신 제6일 오전에 전갈인간, 인마(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에서 허리까지는 인간이고, 그 나머지는 말 모양인 켄타우로스), 그리고 황소의 머리를 한 미노타우루스(삼황오제의 한 분인 신농씨도 그 족보이다) 등을 만드셨는데 그 중 가장 먼저 죽은 반인반수가 - 그것도 암놈이 - 염라로 지옥을 창설하고 시황(始皇)이 된 것이다.

염라가 지옥을 만든 것은 자신들을 반쯤만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든 데 불만하고 반항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창세기 6장 1~2절을 보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느님의 어떤 아들들이 어떤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지상에 사랑이 피어나고 향연이 무르익을 때에 함께 그것을 누릴 수 없는 반인반수들 - 특히 암놈들의 삶은 시기 질투가 속에서 부글거리는 고통이요, 분노였다.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무섭게 시기하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마침내 염라는 이들의 대변자가 되어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염라는 분명히 여자였다) 하느님과 담판을 벌인 결과, 죄를 지은 인간은 지옥에 데려가 마음껏 유린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아울러 착하게 산 반인반수는 다음 생에서 인간으로 구제한다는데도 합의했다.

하느님이 지으신 인간은 처음에는 모두 착했다. 에덴에는 죽음도 없었다. 그러니 지옥은 서로 물고 뜯고 싸움질을 일삼는 반인반수들로만 가득했다.

염라는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반인반수처럼 죄를 짓고 죽고 해서 지옥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벌려놓으면서, 동시에 죄의 씨앗을 아담과 이브에게 심어놓아야겠다는 계략하에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열심히 살피던 염라는 이윽고 아담이 즐겁게 가지고 노는 자궁 크기와 같은 구멍을 발견했다.

하와와 뜨겁게 즐기는 것은 잠깐이요, 땅에 파인 구멍과 노는 것은 하루 종일이었다.

“옳지. 저 구멍을 잘 활용하면 길이 있을 거 같군. 흐흐흐…” 염라대왕은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하느님 말씀을 살폈다. 창세기 3장 1절에 힌트가 있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염라는 즉각 뱀을 지옥으로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한 뒤 소원을 물었다. 뱀도 이때는 긴 꼬리를 가진 반인반수였다. (2000년, 레바논에서 발견된 뱀의 화석에는 두 개의 뒷다리가 있었다. 아마도 창세기 3장, 몸통으로 다니도록 저주받기 이전의 뱀이 아니었을까?)

소원이 무엇이냐. 하니 뱀은 말했다. 모든 반인반수와 마찬가지로 제 소원은 인간이 되는 거지요. 꿈도 야무지구나. 네가 어찌 인간이 될 수 있겠느냐? 아니, 제게도 머리와 몸통이 있고 손발이 있으니 꼬리를 짧게 자르고 성형을 잘 하면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놈. 택도 없는 소리 말고 가능한 소원을 말하거라. 제가 도저히 인간이 될 수 없다면… 뱀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인간이 되지 못한 한을 휘두를 수 있는 지옥의 제 2인자는 어떻습니까? 대왕님을 보좌하며 죄지은 인간을 다스리는 자리 말입니다….

죄인을 다스리는 것으로 한을 풀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자기도 어차피 지옥행일텐데 미리 사후 자리를 튼튼히 하고 싶은 영악한 마음도 담겼을 것이다.

염라는 흐뭇했다. 오냐. 그러면 인간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야겠지? 지금 같아서는 잡아 내릴 인간이 하나도 없으니까. 좋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너는 나의 부탁을 들어다오. 아담과 하와에게 죄의 씨앗을 심도록 해라.

아담과 하와에게요? 뱀은 난감했다. 아니 그 착한 아담과 이브에게 어떻게 죄의 씨앗을….

귀를 가까이 대 보거라! 크게 말해도 들을 사람이 없었지만 은밀한 주문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염라대왕은 뱀의 귀에 속삭였다.

하느님이 한 가지 빌미를 주었다. 짝도 없이 땅바닥에 자궁과 같은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놓은 거지. 아담이 골프라고 이름 지은 건데 그걸 잘 이용하면 남녀 사이를 벌려놓음은 물론, 인간의 비루함을 남김없이 보이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참을성도 없애고, 노기는 충천시키고, 거짓말로 속이기를 가르쳐 결국은 하늘이 도저히 용서 못할 인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짐이 필요했다. 그러면 제 소원은 들어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내가 확약하지. 여긴 지옥 아닌가. 자네 같은 간교하고 영악한 악질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야.” “알겠습니다.”

뱀은 인간은 못돼도 지옥의 2인자는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지상으로 올라와 에덴에 숨어 들었다.

[소설가(小說家). 다인(茶人). 여행가(旅行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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