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즐겁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즐거움이 행복을 연계 할 수 있다. 그러나 즐거움이 끝나고 나서도 자신이 한 일이 건전하지 못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사회에도 떳떳하지 않은 즐거움이었다면 그 순간의 즐거움 뒤에는 꼭 후회가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순간의 즐거움이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꼼꼼히 생각해보면 순간의 즐거움은 그 순간의 즐거움으로 끝날 뿐,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오직 공허함일 뿐이다. 이는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이라기보다는 쾌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신문을 비롯한 방송을 청취하다보면 이 사회가 너무 살벌하기만 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연의 처를 병실로 찾아가 죽이기까지 하고 전철 안에서 아이엄마가 아버지뻘 되는 노인에게 막말을 하고 몇 푼의 재물을 갖기 위해 애꿎은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기도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회가 되다보니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이 고통스럽다보니 ‘전체주의적 유토피아’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Pain is inevitable Suffering optional)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전적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다.

마라토너들이 40km가 넘는 장거리를 달리면서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기 위해 쓰는 말인데, 마라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주 간결하게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얼핏 ‘아픔’과 ‘고통’ 이란 우리말이 동의어 같아서 헷갈리기 쉽다.

마라톤을 하지 않아도 아픔과 고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겪게 된다. 질병이나, 사고는 물론 실연, 실직, 낙방, 사업 실패, 부도 등 여러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실수든 실패든 피하고 싶어도 되풀이되고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쩜 우리네 인생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를 추월해 가는 모든 타인들과 세상을 원망하면서 “아, 이젠 정말 안 되겠다” 고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아직은 아냐, 여기서 내가 멈출 수는 없다”며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비록 지금은 잠시 뒤쳐졌지만 다시 달릴 수 있다. 그렇게 아픔을 무릎 쓰고 선택하는 고통에 희망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과 고통과 인내의 대가를 치러야만 진정한 즐거움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극심한 불황과 싸우면서도 즐거이 달리는 우리가 아니던가.

세상은 좋은 일을 했다고 꼭 그 사람에게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다. 반대로 나쁜 일을 했다고 해서 꼭 나쁜 결과만 나오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피나는 고통을 감수하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은 커다란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전부는 아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꼭 그만큼의 눈에 보이는 결과는 얻지 못할지라도 항상 우리에게 그에 합당하는 물질의 축복을 내려준다.

세상은 항상 누구에게든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꼭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우리에게 약속해준다. 세상이 주는 시련과 실패는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인내와 지혜를 선물로 주면서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최근 통계적으로도 입증하고 있는 행복과학은 인간 행복의 제 1요소로 “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를 꼽았다.

영국의 미술 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관심 어린 관찰”이라고 했다. 그가 사진기 대신 연필을 들고 아름다운 대상을 그려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다. ‘위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대방에 대한 진심어린 관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디카’로 찍어대고, 심지어는 동영상화 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문자메시지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특정인을 비방하는 글을 올려 쾌감을 느끼면서 상대에게는 아픔을 주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무리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살벌해진 사회가 되어버렸으니 정작 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작은 슬픔을 가진 자는 이를 이야기 하지만 큰 슬픔에 빠진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는 얘기가 있다.

물질의 풍요함과 즐거움 추구 이전에 과연 내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오늘 하루를 성실한 마음으로 소중한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은 우리의 밝은 내일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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