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지만 서울 강남의 개발 붐을 타고 부동산 투기 바람으로 일약 떼 부자가 된 사람들이 편리하고 값비싸고 넓고 좋은 아파트를 사려고 난리를 피운 때가 있었다. 또 좋은 학군을 찾아 강남으로, 강남으로 모여 든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말 중에 하나가 “아직도 강북에서 사시나요?”다. 다분히 비꼬고 천시하는 뜻과 자조 섞인 농담들이 서민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기 사, 어느 나라 속담인가 “부유하게 되면 친구도 바꾼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옛 부터 신분이 상승하면 그에 걸 맞는 수준의 사람들을 사귀고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는 옛날에 무식하고 가난했던 때의 친구들과도 계속해서 교분을 나누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신분이 상승되다보면 옛날의 이웃들, 또는 옛날 신분이 자신과 같았던 이웃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어떤 젊은 청년, 지식도 많고, 재물도 풍부하고, 신앙심도 무척 깊었다. 젊겠다, 부자겠다, 거기다 학식까지 높겠다. 부러울 것도, 아쉬워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교만심까지 있어 예수를 은근히 시험을 하려고 대화를 시작한다.

율법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보라는 문제에 대해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식만으로는 부족한 법이므로 그 지식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들은 젊은 청년은 근심만 쌓였다. 그래도 끈질기게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인가?”를. 예수의 대답은 역시 간단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인가?” 하고 되묻는다. 물론 또 다시 답이 나온다. 그 강도에게 당했던 사람을 만났던 제사장, 바리새인, 사마리아인 중 강도를 만난 사람을 치료해주고 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 이방인인 사마리아인 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이웃(친구)의 기준을 누구에게 두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젊은이의 이웃은 당연히 그와 비슷한 사람들로서 젊은이가 기준이 될 것이다. 한편 강도를 만나 재물도 다 잃고 죽기직전의 사람으로 볼 때 부자 청년에게는 언제나 이웃도 많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친구를 선택하고 사귀고 말고 할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강도를 당해 모든 것을 빼앗긴 자에게는 친구를 선택하고 사귀고 말 것도 없다.

설령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친구로 하자고 다가온다 해도 모두가 다 친구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똑같이 힘도, 능력도, 배경도 없는 자들과는 쉽게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거룩한 성탄절이 며칠 후면 다가온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누구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명해진다. 나보다 어떤 면에서든지 부족한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다가가서 무조건의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부터 말씀의 성취가 시작될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이웃사랑을 거창하게 하려니까 부담스러워지고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웃 구제는 꼭 물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극히 아주 낮은 자 하나 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 따뜻한 우유 한 컵 대접하는 것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우리가 베푸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 실례가 바로 사도행전 3장이다. 물질 없이도 이웃에게 베푸는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거지를 바라보는 베드로의 눈빛은 동정의 빛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당시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베드로가 순간 거지를 향해 외쳤다.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포함 되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지닌 것은 없었지만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 있게 기도하면서 그 응답된 기도의 혜택이 앉은뱅이 거지에게로 간 것이다. 앉은뱅이 거지가 일어나 걸을 만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고침 받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 거지는 그래서 기도조차 할 생각이 없었는데 믿음에 사람의 기도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았고 걷고 뛰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한 해가 어둑어둑 저물어 가는 시간,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종소리가 닫힌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열며 잠시 이웃을 잊고 멀리 떠났던 사마리아인들이 하나 둘 돌아오며 풍기는 훈훈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아직은 이 세상에 훈기가 남아있나 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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