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을 출입하다보면 인근 주민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어떤 느낌을 받는가. 무관심한 표정도 만나겠지만, 그 보다는 경원하는 시선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외국의 경우도 그럴까 싶어 골프가 있을 때마다 눈여겨보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나같이 마을에 골프장이 있는 것을 자부했다. 골프장이 있어서 경관이 아름다워지고, 사람들에겐 일자리가 생기고 관광객이 몰리는 등 경제가 활발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규 골프장이 건설되는 경우도 크게 환영하고 협조하는 분위기였다. 골프장 건설 계획만 나돌아도 집단으로 결사반대(?)에 나서는 우리와는 정 반대였던 것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환경단체들이 유난히 극성스러워서일까? 심히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는데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애초에 골프를 운동이 아닌 소수 유한층의 사치성 오락으로 간주하여 관광객 이용시설업으로 특별 관리를 한 정부의 까다로운 허가와 규제였다.

뉴코리아CC, 제주CC, 등 1966년 전후에 개장한 골프장이나 유성, 양지, 도고 등 1970년 이전에 허가 건설된 골프장의 경우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거부감은 없었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에 생겨났다.

골프가 유한층의 운동이 아니라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하면서, 캐디가 전문직업인이기 이전에 ‘재미로 꺾일 수도 있는 게임의 대상’을 겸하는 ‘골프장의 꽃’ 정도로 제공되다보니, 골프장 경영측은 젊은 여성들을 대거 투입하여 플러스 알파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특권층에 유착할 수밖에 없는 정ㆍ재계 인사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플러스 알파를 포함한) 부킹권 확보(?)에 나서면서 골프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자 신설되는 골프장마다 ‘(그 모든 면에서) 최고급 프라이빗 클럽’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힘있는 기업이나 단체는 아예 그런 골프장을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잘못 뿌리를 내린 풍토가 반성이나 개선의 노력 없이 그대로 그늘에서 자라, 쉽게 손댈 수 없게끔 커버린 것이었다.

음지에서 잘못 자란 골프문화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찬스가 지방자치제 실시였다. 지역의 경제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골프 문화는 대중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서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도 없었고, 삶의 질 향상으로 늘어나는 골프 인구에 비해 골프장 수는 현저히 부족했던 만큼, 기득 계층은 변화를 거부했다.

그 결과 골프는 음지에서도 모진 추위와 혹독한 시련을 거치며 ‘비난받는 대중운동’으로 기형적 성장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일본 각 지역의 골프 문화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큐슈의 오이타나 가고시마, 나가사끼나 홋가이도의 골프장뿐이 아니라,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혼슈 북단 아오모리, 아지가사와, 이와데, 센다이 등의 골프장까지 두루 돌았는데, 어느 지역을 가도 골프장의 캐디는 골프장 인근 마을의 수더분한 중년 주부들이 대부분이었고 골프장 직원 역시 마을의 청ㆍ장년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필리핀이나 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캐디는 사관생도처럼 청소년을 뜻하는 말이다. 기록상 캐디의 시조(?)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골프채를 들고다닌 청년이다.

골프백 메어주고, 클럽 골라주고, 각 홀마다의 특성, 위험, 실수하지 않도록 코치해 주는 사람인데, 미국에서는 어린 소년들, 영국은 노장들, 일본은 나이 많은 여성이 주류를 이룬다.

영연방이랄까, 영국문화권에서는 지금도 학생(청년)들이 아르바이트로 캐디를 하는 곳이 많다. 2010 월드컵이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과 케냐 나이로비 근교에서 골프를 한 일이 있는데 캐디는 그곳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남자 아르바이트였다.

골프는 그렇게 지역에 이바지함으로서 지역민의 아낌을 받으며 지역 경제에 활력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은 어떠한가. 골프장이 들어서면 좋은 옷 입고 고급차 탄 사람들이 드나들며 위화감이나 조성하고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캐디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들은 모조리 도시에서 오니 지역에 젊은 주부가 있다고 해도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직원도 지역 일꾼을 뽑는 일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역 주민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기껏해야 잔디 보수관리나 토목 잡부 등 단순 노동이 전부일 뿐 아닌가.

도무지 골프장이 들어서서 마을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나쁜 일만 생기니, 환경문제가 아니더라도 골프장 건설을 반대할 수밖에 없고, 내장객을 반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필자는 골프장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표현해 본다. 나르시시즘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말의 정신의학자 네케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에서 유래된 말로 자신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쾌감을 느끼기 위해 보고 만지고 애무하고, 자기 몸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는 행위를 표현한 말이다.

이것이 요즘에는 자기 도취에 빠져 자기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성구별도 없이 골프를 통해 유사 섹스를 즐기는 오늘의 골퍼와 골프장이 자위행위와도 같은 이런 나르시시즘에 젖어버린 것이다.

골프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골프장의 경영 개혁이 선행되어야함은 물론이다. 친환경 이전에 친지역, 친주민 경영으로 체질을 180도 건전하게 개선해야만 한다. 그래야 골프장을 드나드는 골퍼의 마음이 편해지고, 그래야 골프도 편하게 정복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골프장의 수도 어느덧 439곳에 이른다. (2009년 1월 기준) 회원제가 240, 퍼블릭이 199곳이다.

미국의 1만5400곳, 영국의 2645곳, 일본의 2440곳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숫자일지 모르지만 기형적으로 자란 골프문화로서는 많다고 여겨지며, 더 늦어서는 안될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하겠다.

골프를 하는 사람 중에는 유난히 태도와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고, 자기 삶과 취미에만 몰두해서 옆에서 보기에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도 많다.

그러나 골프 역시, 혼자 하는 운동이라지만 결국은 혼자가 아니기에 주변 요소와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소설가(小說家). 다인(茶人). 여행가(旅行家).]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