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시장에 400개 기업이 왠말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본이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 역시 자본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지난 외환위기 때 ‘자본의 능력’을 뼈 저리게 실감한 바 있다.
IMF 사태는 수많은 기업들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그 통에 거리엔 실업자가 쏟아졌고, 국민들은 춥고 배고팠다.

▲IMF의 교훈
굳이 그 책임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IMF의 원죄는 영세서민에 있지 않다.
그들은 피 고용주로써 ‘자본의 노예’로 일한 것이 원죄라면 원죄다.
그것은 오히려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기업들에 더 가까웠다.
기업들은 그 댓가를 혹독히 치렀다. 인원감축과 조직재편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한국기업들은 예전에 비해 체질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MF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측면도 있지만 나름의 가치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의 모르는 요지부동인 기업집단이 있다.
바로 한국의 제약기업들이다. 그들은 마치 ‘자본주의’를 실험하 듯 변화를 싫어한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한결같다. 겉으론 혁신경영을 외치고 있지만 말이다.

▲경영능력 탁월한(?) 제약기업들
한국 제약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망하는 기업이 없다는 사실이다. 경영주의 잘못으로 부도가 날지라도 문을 내리는기업은 없다. 쓰러질 것 같다가도 용케도 살아남는다.
그런 덕분에 우리나라 제약기업은 무려 400개가 넘는다. 비좁은 땅 덩어리 치고는 놀라운 수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연간 매출액 200∼300억원 미만의 영세기업이다.
삼성전자는 1개기업이 달성하는 매출액이 연간 40조원을 넘는다. 반면 국내 제약기업은 400개 전체를 합해도 10조원을 넘지 못한다.
그것도 기업들의 임대수익이나 다국적제약사들의 실적부분을 제외하면 순수 토종제약기업들의 매출은 이보다 훨씬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 돈으로 제대로 된 구조조정 한번 없이 용케도 살아가고 있다.
그 비결이 자못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혹자는 토종제약기업들의 경영능력이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약기업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은 따로 있다.
우선 의약품은 물류비가 크지 않다. 저개발국가에서 값싼 원료, 일명 저질원료를 수입하다 제품을 만들어 내면 그다지 원가부담 없이 높은 마진을 낼 수 있다.일례로 제약은 화장품 다음으로 원료값 부담이 적은 업종이다.
(이의가 있는 기업은 원료값을 공개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대신 연구개발(R&D) 등 ‘소모적 투자’는 최대한 배제한다.
혹자의 생각대로 어찌보면 경영수완이 매우 훌륭한 셈이다.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물론 국내 제약기업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정말(?) 잘하는 것도 많다.
첫째, 족벌경영이다. 일부 기업들은 아들과 며느리까지 ‘경영전사’로 나서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기업간 인수 합병(M&A) 이야기만 나오면 오너의 인상이 여지없이 구겨진다.
(기업별 족벌경영의 실태는 조만간 구체적으로 진단할 계획이다.)
둘째, 자사 의약품의 채택을 위해 의료계에 지출하는 랜딩비 등 로비기술이다. 너나 없이 의사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적지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것들은 기업의 1급 비밀인지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셋째, 덤핑과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다. 덤핑은 워낙 많은 기업들이 생존을 할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치더라도 너무 많은 기업들이 건강식품 등 의약외품 사업에 진출해 있다.
무늬만 제약기업인 셈이다.
이를 두고 기업 관계자들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에 신약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런 기대를 사치라고 까지 말한다. 또 멀지않은 장래에 상당수 토종기업들이 문을 내리거나 비 제약업으로 간판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망할 기업 빨리 망해야
그런 사이 한국에 둥지를 튼 다국적 제약사들은 매년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의약분업을 계기로 오리저널 의약품의 처방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한국 의약품 시장 점유율은 올해 40%대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이면에는 신약이라는 주 무기가 있지만 이에 앞서 그들은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더블어 기업간 합병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있었던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사와 파마시아의 합병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이런 합병을 통해 더욱 탄탄한 기업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M&A를 외면한 채 철저하게 족별경영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의 제약업계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약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기업간 인수 합병에 나서고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장기 생존할 경우 건강한 기업까지 시장경쟁에서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망할 기업은 하루 빨리 망해야한다. 현재의 국내 제약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50여개 내외로 줄어야한다.”
국내의 한 유명제약사 관계자도 이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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