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인 민초들의 눈물

밤새 비가 쏟아진다. 쏟아지다 못해 때로는 천둥 번개까지 치고 있다.

정치인들을 잘못 만난 죄로 상처를 입은 힘없고 소외된 백성들의 눈물과 분노의 함성인 것 같다. 오늘날 이 시대는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사회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일으키는 원인은 ‘피해의식’ 이고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으로 느끼는 상처는 ‘무너진 인간관계’ 라고 한다. 그런 상처는 애착에서 나온다. 그래서 애착을 버리면 아픔도 없다.

남자에게 얼굴이 못 생겼다고 말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자 에게 똑같은 말로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면 크게 상처를 받게 된다. 왜? 라는 물음에 여자의 경우 남성과는 달리 얼굴이나 몸매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답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받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굳이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라도 스스로 애착을 갖는 부분에 대해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데 안간힘을 쓰며 마음을 소모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요즘 비정규직 법안 처리 등 주요안건이 산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엾은 백성들의 혈세를 받는 의원들이 아직도 마음을 비우지 못한 채 등원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존심을 내세워 상대 당을 헐뜯고 비난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작 배부른 자들로서 자신들을 뽑아 준 백성들이 상처를 입고 울고 있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백성들의 급한 마음은 아예 관심조차 없다.

어떤 교회 집사가 산길을 가다가 네 다리를 모두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여우를 보게 됐다. 야생동물이라 굶어 죽겠구나 생각하며 지나쳤다. 며칠 후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 여우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더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우가 살아있었다. 하도 궁금해서 몰래 숨어서 여우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여우가 호랑이 밥이 되어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호랑이가 여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았다.

믿음이 강한 그 집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다리를 다친 여우에게 호랑이를 보내 저렇게 먹이시는 구나라고 감탄하면서 자기도 그 믿음대로 행하고 싶어 그 이후 마을로 내려와 일도 하지 않고 누워만 지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사람도 없고 호랑이도 오지 않는다. 결국 집사는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죽고 난 후 그 집사는 천국에 있는 하나님을 찾아가 분한 마음으로 “왜 여우에게는 호랑이를 보내셔서 먹을 것을 주시면서도 믿음이 강한 내겐 호랑이를 보내주시지 않아 굶어 죽게 만들었나요.?” 하고 아주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하나님 왈 “왜 너는 호랑이의 본을 배울 생각은 안 하고 여우의 본을 받으려 하느냐.?”

그렇다. 편협한 사람은 모든 사건과 이야기를 자기 입맛대로 한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좋은 쪽으로만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입장을 달리해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 그래서 남을 먼저 배려한다. 그런 마음이 되다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게 되고 막힌 것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 하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멋진 자동차를 선물로 사주었다. 동생이 새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 평소 잘 알고 있는 동네 꼬마를 만났다. 꼬마는 신기 한 듯 차를 처다 보며 자동차를 새로 산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차를 산 것이 아니고 형이 선물로 주었다고 하니까 굉장히 부러워하는 것 같아 위로를 할 겸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며 너도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을 날이 올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꼬마가 말하기를 자신이 부러워하는 것은 선물 받은 것이 아니고 그런 선물을 할 수 있는 형님의 마음이 부럽다는 것이다. 무엇을 부러워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자연히 편협한 사람은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 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입장을 달리해서 보는 사람은 더 큰 섬김을 위해 나가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이 필리 버스트(의사진행방해)로 다수의 여당의 역점처리를 가로막고 있다. 그런 행태를 보이면서도 독재니, 민주주의의 위기니 하며 어처구니없게도 과거 악습을 답습하고 있다. 독설은 독설을 낳는 법이다. 그 상처의 자국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 자살을 무슨 구혼투수를 만난 것처럼 이성을 잃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노(怒)정치인이 있다.

특히 일부 야당의 경우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법까지 어기면서도 이를 제지 하려는 공권력에 대해서는 군중의 힘을 이용, 생떼를 쓰고 과격한 시위에 대해 경찰이 법 집행을 하려면 집회의 자유를 막는다고 맹공격한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 하듯 자기들이 하는 것은 민주주의요 법을 집행하려는 경찰이나 정부는 독재자로 내 몰아버리는 참 편리한 사고방식을 가진 민주주의 인사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반공국가 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겁도 없이 국체를 부인하는 대담성을 보이면서 현 정부를 독재로 몰아 부치며 백성들에게 상처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정치인을 몰아내자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다. 모두가 침묵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든 세상인 것 같다. 묻고 싶다.

독재라고 하는 어르신과 철부지 같은 일부 사회단체와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정부를 성토하기에 앞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을 향해 한 번쯤 질타 하는 촛불 시위는 할 의향이 없으신지? 그리고 민초들에게는 이 같은 국회를 해산하자는 운동을 할 의사는 없으신지?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빵보다 펄럭이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정치권의 안일. 무관심으로 인해 졸지에 직장을 잃고 먹을 것이 없어 헤매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당당히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를 보고 버러지 같은 인간이라고 함부로 말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살아온 인생여정의 상처를 한 번이라도 어울러 줄 수 있었겠는가. 그가 살아오면서 증오했을 세상을 당신은 겨자씨만큼이라도 이해하며 사랑의 손길로 대할 수는 없었는가.

다시 한 번 더 묻고 싶다. 당신들은 왜 남의 의사는 무시한 채 왜 이기려고만 하는가?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싸움에 져주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주 작은 겨자씨만큼의 말이라도 아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란 영화가 있다. 영화 속 군상들 모두가 자기도 모르면서 얄팍한 자존심으로 ‘똥 폼’을 잡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삶에 함부로 못을 박으며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판단의 잣대란 게 어설픈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이념 내지 편견인 경우가 허다하다. 마지막 부분에 여자 주인공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결국 이 영화가 우리 관객에게 주고자 한 메시지는 오만에 대한 경계일지도 모른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오만을 모든 죄의 어머니. 곧 용서 받지 못할 죄(unpardonable. sin)로 규정하고 있다. 오만한 인간은 사랑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한다. 복수를 완성한 자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정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도 보복이나 원수 갚음은 나라나 사회 가정. 개인에게서 철저히 배제했고 특정인을 다수가 죄인 취급을 한다 해도 그들과 공감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라가 위기에 처해 여러모로 어려움이 중첩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되도록 여. 야.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 되어 대한민국?사랑하고 북한에 적극 대응하되 특히 정치인들이 관용을 베풀어 백성들이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좋은 나라, 밝은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필자의 어리석은 오만에서 쓰여진 글이 되기를 바란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