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人을 편히 떠나보내자

필리핀에 체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비보를 접하게 되니 맥이 빠지고 가슴이 찡해온다. 그렇게 살다 가는 인생인데…. 점심 식사를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충격을 받으면서 순간적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놓고 이를 호재로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발 빠른 집단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책임은 우선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속 수사 여부 결정은 검찰의 몫이다. 전직 대통령의 체면과 예우 문제는 여기서 고려 할 사항이 아니다.

그 같은 전관예우는 퇴임 후 안전하고 품격 있는 생활여건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품위를 실추시키고 비리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까지 특별 예우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정당과 사회단체 등이 노 전 대통령 자살과 관련,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또 수사를 한 수사관을 문책하라고 하며 심지어는 정권퇴진 운동까지 벌리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

특정인에 대해서는 비리가 밝혀져도 무조건 관용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는 법의 평등함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그 같은 행위가 집권당과 권력자를 흠집 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정작 책임을 질 사람들을 꼽는다면 남편의 내조를 잘못해 이런 비극을 초래한 아내와 당시 여당으로서 보필을 제대로 못한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신 상(喪)중임을 감안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면서 국민들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가 보낸 조화를 훼손하면서도 북한에서 보낸 조전(弔電)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더욱 가관인 것은 모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서울 광장을 시민이 활용하겠다는데, 추모 행사를 갖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불허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 뺏지 달아준 자식들을 감옥으로 보냈던 그 분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분 말대로 서울 광장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시청 앞은 서울 시내 한 복판이고 평소에도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다. 또 세계 각국의 눈이 모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추모식을 그 장소에서 갖고 싶어 하는 시민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자중하고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어야 할 전직 지도자가 집회를 불허한 현 정부를 원망하며 분란을 조장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제발이지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지난 해 촛불 시위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제대로 안다면 비난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쩜 이 같은 갈등과 비리넝쿨에 대한 책임은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 분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감히 지적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변호사 사무장 출신인 최도술 총무비서관 재임 때부터 유시민, 이광재, 안희정, 서갑원, 이강철 등 측근들이■직언도 하고 정권내부에 경고도 하면서 정신을 차렸어야만 했다. 그런 것들이 바로 그들이 추구했던 동지의식이요 집단적 책임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성을 강조하는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시는 민정수석이 기업가에게 1억 원어치 상품권을 받았고 대통령의 친구이기도 한 총무비서관은 국고 12억여 원을 횡령 한 것으로 드러나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재벌과 사돈을 맺으면서 부(富)와 명예를 걸머지기도 했다. 더구나 고인의 정치 스승이라고 자부했던 분도 얼마 전 검찰에 소환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부족해 영부인이 빚 갚는 명목으로 남편 몰래 거액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개인의 비리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이념 갈등과 지역감정이 심화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꼴이 엉망이고 큰 소리를 내는 자들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망자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머릿속이 착잡해진다.

그렇게도 넉살좋고 당당했던 그의 죽음이 허망하고 불쌍하다. 자존심 강한 그가 혼자 겪었을 고통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한 때는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그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 아쉬운 것은 적어도 한 나라의 국가 최고지도자였다면 그런 식의 죽음이 남은 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죽음 직전에 국민들에게 대통령으로서 명예를 지키지 못했고 도덕성에도 흠집을 내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솔직히 사과하고 국민들의 처분만을 바라겠다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서 상 용서를 받고 이 같은 비극의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세계 최대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공인으로서의 그의 그 같은 행동은 적절치 못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 우리는 퇴임 대통령을 가두고 또 보호하지 못하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국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남북 전쟁이 끝날 무렵 취임 후 6주 만에 백악관 근처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해 사망한 아브람 링컨의 경우 남과 북이 이념적, 정치적 입장을 떠나 오직 그의 죽음만을 슬퍼하며 애도를 표했다.

링컨은 재선 취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촉구했다. 아무에게도 악의를 갖지 말고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분열된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며 우리 자신과 이 나라에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자고 했다. 미국 시민들은 그가 저격을 당했을 때 이 연설문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하나가 되었다.

우리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자성과 함께 갈라진 마음들을 하나로 통합 시켜 국가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데 일부 추종자들이 측근들의 말도 듣지 않은 채 제사보다 젯밥에 맘이 있듯 그의 죽음을 앞세워 자신들이 잃어버린 힘을 모으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모든 이에게 추모의 기회가 마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빈소가 마련 된 한 쪽에 현실 정치 문제를 거론하는 전시물을 설치하고 특정인들에 대해 조문의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숙연해야 할 장례식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통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안해 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고인(故人)이 하늘에서 어떤 심경으로 우리를 바라보는지를 생각해보자. 날이 갈수록 추모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봉화마을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고인이 살아있을 때는 비난을 일삼아 왔지만 막상 세상을 뜨자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며 그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후일에 역사적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 같은 현상은 애도의 마음도 있어서겠지만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무너진 탓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기 자신 스스로가 위로 받고 싶은 심정에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데 대한 인간적 연민 때문에 빈소를 찾아가는 것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즉 국민이 정치적으로 마음을 주고 의지할 만한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는 죽은 당사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앞서 북한과 대립되어 있는 우리가 분열의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

지금은 정치공방을 하며 상대를 헐뜯기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때다. 그의 죽음으로써 이제까지의 쌓였던 갈등과 모두에게 담겨있는 미움을 눈물로 씻어버리고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기도하자.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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