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내가 알고 있는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 되시는 분이 아내의 사소한 어떤 행동을 매우 못마땅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런 의도로 한 행동이 아닌 것 같은데 누구보다도 아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평소 아내의 행동을 보아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깊은 오류라고 해야 하는지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 사실 여부 진의를 떠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잣대에 끼워 맞추어 너무나 확고하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남에게까지 그것들이 사실인양 전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붉은 색의 선글라스를 끼고 본 세상은 당연히 다 빨갛게 보인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낀 선글라스를 벗어야 한다고 누구나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형태의 사람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자신만의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물질적으로 보여지는 부분 속에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진짜 뜻이 있는데도 그 진짜 뜻을 보지도 않으려 하고, 알지도 않으려 한다. 아무리 내 맘대로의 세상일지라도 보이는 대로 함부로 살아도 되는 세상은 아니다.

우리가 유리컵을 사용할 때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컵의 바닥이나 둘레가 아니라 컵 속의 빈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못 느끼고 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환경 탓에 앞서 우리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데 달렸다. 우리 마음속에 바른 생각과 바른 믿음을 갖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해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강고수부지를 걷고 있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웬수 밥 차려 놓고 운동하러 나왔는데 나올 수 있느냐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별로 선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원수와 함께 살아주면서 일용할 양식까지 차려 주시는 분이시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처럼 위대해 보였다. 그 원수가 누구일까.

사람들은 어제 마음 다르고 오늘 마음 다르고 또 내일 마음이 다르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떻게 함께 하는 가족을 원수도 아닌 웬수로 불러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화목한 가정은 행복한 부부 생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의무와 책임을 다 할 때 그 가정은 화목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간 서로의 위치에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아무리 부부 관계나 부모의 관계일지라도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둘이 한 몸이 되어 부부관계를 맺고 사는 것도 그 사랑의 결실로 자식을 주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지켜주실 때야말로 그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과 사랑은 좋은 단어이자 아름다운 단어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랑이 있을 때 행복도 있는 것인데 이러한 행복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을 갖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아울러 이 같은 사랑과 행복을 말하면서도 막상 그 행복과 사랑에 대한 정의를 말 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진정한 행복은 개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계발하여 일, 사랑, 자녀양육, 여가 활동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활용하는데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또 친절, 독창성, 유머감각, 낙관주의, 호기심, 열정, 너그러움, 등을 삶에 적용시키면 긍정적인 태도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좋지 못한 외적 환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는 있으나 좋은 외적 환경 역시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내적 만족과 행복은 바로 내적인 보람과 의미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렵고 좋지 못한 외적 환경이나 사건들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각자가 정한 가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7백원짜리 물 한병에 왠지 모를 행복을 느낄수도 있고 7천원짜리 호텔 커피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듯 행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행복의가치는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의 지혜서인 탈무드를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하와)를 만들 때 남자(아담)의 다리뼈로 만들지 않은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하나님이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또 머리뼈로 만들지 않은 것 역시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가정의 중심축은 부부다. 이를 근간으로 가족관계, 부모와 자식, 형제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몸의 중심권이 머리에 있듯이 남편이 가정을 주도하는 가운데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서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고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순종 할 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가 있는데 아쉽게도 핵가족 세대가 된 현실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어떤 부부는 평생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부부는 서로가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새로운 생각이나 타인의 생각을 전혀 받아드리지 못하고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부부도 있다. 부부가 화목해야 이를 통해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게 되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부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이란 사랑하는 부부가 있는 곳이다. 부부 갈등의 원인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이기심과 교만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경이로운 제도는 국가와 시장과 그리고 가족이다. 숱한 제도들이 역사 속에 묻혀 버렸지만 그래도 국가와 시장과 가족은 여전히 우리 인류가 존재하고 있는 한 이 땅에 존립하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족은 무엇보다도 친밀성과 혈연관계에 기반 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만큼 가족은 말로는 쉽게 설명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우리 마음에 안겨준다. 그러기에 평소에는 무심하다가도 어디 먼 곳에 갈 때면 가족의 사진을 지갑에 챙겨두고 그 사진을 꺼내보며 위로와 함께 그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어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것 중 하나가 다소 빛바랜 가족의 사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엔 더 없이 잔잔한 기쁨, 차마 하지 못했던 그 어떤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추억의 그리움이 뒤엉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낡고 오래되었어도 좋은 것은 역시 가족의 사랑뿐인 것 같다.

내조의 여왕 드라마에서 천지혜와 오지호의 가정.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것을 보았다. 오지호의 말대로 아내에 대한 사랑을 60층짜리 빌딩과 바꾸겠는가. 감히 비교가 되겠는가.

5월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이다. 오죽하면 이런 날이 다 정해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가정의 달인 5월이 다 가기 전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나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언제나 들어도 애톳한 이름은 가족, 밖에서는 힘들고 지쳐도 아내가 정성스레 마련 한 식사가 있고 따스한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축복의 가정을 생각해보자. 그래도 발길을 재촉하지 않겠는가. 하필이면 부부의 날 선교 활동을 위해 잠시 아내와 가족을 떠나 필리핀에 와 있다. 하루도 채 안 된 시간이지만 가죽 액자에 담겨 있는 아내와 외손, 그리고 딸들과 사위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그리움의 입맞춤을 한

지금쯤 내가 보낸 장미꽃과 와인을 받아본 아내의 모습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날, 아침 아내에게 사랑의 문자를 보낸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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