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다른 달과는 달리 많은 행사가 겹쳐있는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 날. 15일은 스승의 날. 18일은 성년의 날. 그리고 21일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담긴 부부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얼마 전 ‘꽃보다 남자’ 라는 TV드라마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더니 아쉬움을 남긴 채 종영 됐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 4인방은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갖춘 상류층 자제들이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조건만 보면 참으로 어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적인 모습을 자세히 보면 결코 행복한 남자가 아닌 또 다른 고뇌의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머니와의 냉정한 관계, 아버지의 외도 등의 깨어진 가족관계 안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아픔을 돌출 시키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산업사회에서 자본주의,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가다 보니 현재는 행복의 기준을 주로 ‘소유 가치’ 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재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일 뿐이지 재물 자체가 사람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조건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재물이 많으면 일시적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있으나 지나친 탐욕으로 부유해진다면 그 재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악의 뿌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온 가족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꿈을 키워주며 오순도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안식처다.

독일의 재상이던 비스마르크는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 중 가장 듣기 좋은 단어가 2개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신사(Gentlman)이고 또 하나는 가정(Home)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이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가정이 아니라 늘 즐거움 속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인격적으로 서로를 대하며 존중하는 가족이 머물고 있는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또 빅토리 위고는 집(House)과 가정(Home)의 차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은 좋은 재료로 세워지지만 가정은 사랑의 행위로 세워진다. 또 집은 수십 년 동안 지탱되지만 사랑으로 세워진 가정은 수천 년 지탱한다”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쉽게 무너지고 없어질 집에는 큰 관심을 갖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자손손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오는 가정에 대해서는 인색하리만큼 무심하다. 그래서 가정이 병들어 썩어가고 있는데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죽했으면 어머니 날, 어버이날이 생겼을까.

성경을 찾아보면 가정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은 태초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지배하는 축복을 가정이란 울타리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주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신 후 최초의 가정을 이루게 한 것이다.

8일은 어버이 날이다. 이 맘 때면 의례적으로 우리 귀에 익은 애창곡을 들을 수가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언제 들어도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고생스러움이 진하게 느껴져 오며 심금을 울리는 노래다. 얼핏 들으면 상당 부분의 가사가 불가(拂家)에서 전해내려 오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내용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 경전에 나오는 부모의 은혜는

강보 속의 아기를 마른자리에 눕히고 본인은 아무 곳이나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 평생토록 자식의 안전과 안녕을 기원하며 애간장을 태우는 부모의 수고스러움을 노래한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단 것은 뱉어 자식 입에 넣어주고 쓴 것은 스스로 삼키는 절대적인 사랑을 자식인들 알 수 있을까.

석가모니는 그렇게 커다란 부모의 은공을 갚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가르쳤다. 불공의 기록을 더듬지 않더라도 부모의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크기라는 것은 지구 위에서 생각 있는 존재라면 다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도 이미 십계명 중 다섯 번째로 “네 부모를 공경(恭敬)하라” 하신다. 그렇게 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리라며 축복을 약속하셨다. 또 동양의 묵자(墨子)는 부모에 대한 공경을 ‘겸애’(兼愛)로 간단하게 표현했다. 남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생각한다면 세상의 평화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서 이는 묵자의 사상을 관통하는 ‘너와 나의 합일’ 정신과 일

이 같은 논리에 대해 맹자는 “내 부모를 잘 모신 뒤 남의 부모에까지 그 공경을 확대해야 한다”고 묵자의 논리를 반박한다. 섣부른 박애주의보다는 나로부터 시작해 남에게 미친다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요즘 같이 흘러가는 세태를 보면 묵자의 말 보다 맹자의 말이 더 신뢰가 가는 말 같다. 이 같이 부모공경에 대한 지침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효(孝)사상을 우선적으

재산이 많은 어느 노부부가 늘그막에 아들 둘에게 재산을 물려준 후 오갈 데가 없어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했는데 자식들이 똑같은 자식이니 공평하게 모시자는 차원에서 두 아들이 한 분 씩 모시기로 하고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작은 아들은 어머니를 모셨다고 한다.

이 노부부는 졸지에 같은 서울 하늘아래서 서로 떨어져 살다보니 중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기로 하고 그 날만 되면 서로 손을 맞잡고 몇 시간을 보내다 헤어지는 현대판 견우와 직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만남도 부인이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끝났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는 우리가 대가족시대의 밥상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대가족시대에는 모든 가장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어른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 간에 베풀고 나누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고 남을 생각 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대가족제 가장의 중심의 틀이 점차 핵가족화로 인해 가장의 권위가 추락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탈바꿈하면서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함몰되고 있다. 아빠 따로, 엄마 따로, 나 따로 식의 식사문화가 되다보니 가족 간에 대화도 단절되고 남을 배려하거나 베풀고 나눔을 모르게 된 것이다. 결국 나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되다보니 부모까지도 득실을 따지는 자식이 되어필요하면 붙고 가치가 없으면 버리는 환락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가정의 위기와 불행은 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녀를 잘 교육시키고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가족의 기초가 되는 부모가 상호 상대적으로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의 도리를 모범적으로 지켜야 이상적인 가정.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다.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내면화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니 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옛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늘 홀로 계신 노모를 생각하면서 부르는 내 노래다.

언제나 불러도 눈시울이 뜨겁다. 지척에 두고도 가 뵙지 못하는 노모가 생각난다. 5일 어린이날과 8일 어버이날을 합쳐 가정의 날로 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날은 휴무로서 분주함에도 불구, 어버이날은 썰렁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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