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흐름을 알려면 당시의 유행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드라마를 보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떠돌던 유행어의 변천사를 짚어 보았다.

우선 2005년은 냉소주의와 달관이 엇갈린 해였던 것 같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이영애의 대사 “너나 잘하세요” 그리고 ‘웃찾사’의 “됐거든”까지 냉소적인 말이 유행되었다.

2006년에 들어서면서 개그우먼 김미려가 비음섞인 목소리로 “김기사, 운전해. 어서”로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비꼬는 말을 했고, ‘웃찾사’는 반전 상황마다 “이건 아니잖아” 또 한예술의 “꼬라지 하고는”이라는 말로 서민들을 웃기며 대리만족하게 했다.

2007년에는 쇼를 한다는 말이 가진 부정적 어감을 덜어내고 마음껏 인생을 즐기라는 뜻이 담긴 한 통신사의 CF “쇼를 해라”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했다.

2008년은 안상태의 “~뿐이고”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의 “똥덩어리”로 아무 대책이 없을 정도로 한심한 세상을 나무랐다. 거기다가 어떻게 생각하면 낙천적인 로고송 “생각대로 하면 되고”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유행어의 변천사를 더듬어 보면서 우리 인간이 참 편하고 감사할 것이 있다면 지난 일을 쉽게 잊는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IMF 때를 생각해서다. 그 당시는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정년)이라는 말이 주류를 이루더니 국민적 화합으로 IMF 터널을 벗어난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던 경제적인 어려움을 잊고 “부자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라”며 ‘부(富)’와 ‘소비’를 칭송하고 부추김을 하는 말이 유행되면서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게 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올해는 필자의 생각이지만 “내 맘대로야”가 유행어로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계나 기업이나 학교를 보아도 하는 꼴을 보면 그럴 것 같다.

좀 심하게 말해 막가는 세상이 되어가다 보니 각 방송사들이 ‘막가는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방영하며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드라마가 사실보다는 허구성으로 전개된다지만 요즘 드라마를 보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허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된다.

MBC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 극중 고모가 엄마 없는 조카를 친자식처럼 키웠으나 자신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 하자 상대여자에게 폭언, 폭행을 하고 자살소동까지 벌이면서 끝내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KBS ‘꽃보다 남자’ 역시 아들을 여자에게서 떼놓으려 별별 획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행복합니다’의 이휘향, 조금 지난 드라마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당기던 표독한 김수미의 모습.

이런 드라마를 보면 대한민국 TV속 엄마들은 ‘백이면 백’ 자식에게 올인하는 맹목적 모성의 화신들이고 그 모성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가 속물주의 인간으로 보인다. 더구나 자식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는 모두 엄마가 한다. 다만 아빠는 무능력자로서 중재역할을 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실감하는 것은 자식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를 보면 그 사회의 가장 지배적이고, 속물적이며, 현실적인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인격이나 자식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하면서 그저 ‘내 맘대로야’다.

결국 자식을 속물로 만드는 것은 ‘내 맘대로야’하는 사고를 갖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 있다. 어느 부모든 자기 자식만큼은 모든 사회적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가능한 권세와 명예를 갖는 상층부에 자식을 올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어떤 고통과 눈물까지도 감수하는 열정을 보인다.

그런 이해타산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의 맘에 안들거나 밑지는 결혼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독립적인 자식을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시켜줄 자신의 연장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상대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맘대로야’다.

요즘 한창 인기절정에 주부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아내의 유혹’과 ‘미워도 다시한번’도 그렇다. 말도 되지 않는데 그것이 주부들의 흥미를 돋구며 쾌감을 느끼게 한다. 또 ‘내조의 여왕’ 때문에 애꿎은 남자들이 부인들에게 시달리며 욕을 먹기도 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메말라지다보니 좀 더 자극적이고 매몰차지 않으면 시청률을 올릴 수 없는 방송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공영방송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보고 느끼는 결과의 파장이 어떻게 되는지 까지는 고려했어야 했다. 물론 사회적 흐름을 감안해야겠지만 이런 식으로의 드라마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모두가 ‘내 맘대로야’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이 안타깝다.

좋은 세상,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눔과 무소유의 가치를 삶 속에 실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가 풍요를 누릴 수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지만 환경과 조건은 자신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안에 ‘먼저’와 ‘나중’의 논리가 너무 팽팽하다 보니 이 사회가 더욱 삭막해지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다보니 서로간에 대립이라는 극한 평행선이 그어질 수밖에 벗다. 결국 그 같은 분리와 충돌은 비극을 낳게 될 뿐이다.

경제위기의 한파속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인기 연예인이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불특정 다수의 애꿎은 사람들을 살생하고, 나만 잘 살기 위해 부정ㆍ부패ㆍ비리를 일삼고, 숱한 사람들이 헐뜯으며 힘든 삶을 사는 이 세상.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가 되어버린 이 상황속에서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 승천하시고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우리의 예수님은 지금 어디 계신걸까,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요즘 서점가의 흥행 키워드는 ‘위로’란다. 경제불황만큼 깊은 불안을 떨쳐내고 싶어서리라.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