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신명이 아는데…

중국의 ‘공자’만큼 수천의 후학들을 양성해 ‘관서 지방의 공자’ 라는 칭호를 얻기도 한 대 교육자인 ‘양진’ 이 나이 50줄에 들어 벼슬길에 올랐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벼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제자들을 키우면서 학자의 길을 걸었던 양진이 지방 실력자의 간

평소 학식의 깊이와 품성의 고매함으로 당대의 사표(師表)로 받아들여진 학자이기에 벼슬자리에 올랐지만 모든 유혹에서 철저하게 벗어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직무 중 사적인 청탁 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며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선을 끄었다.

그가 관직을 옮기기 위해 이동하면서 한 지방 고을을 지날 때 일이다. 현지의 지방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제자가 밤에 숙소로 몰래 찾아왔다. 제자는 은(銀)뭉치를 슬그머니 내놓으면서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리니 요긴하게 쓰시라고 했다. 양진이 그 모양을 보고 누구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네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자 제자가 밤이라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받아두시라고 재차

“무슨 소리냐, 하늘이 알고 신명(神明)이 알고 또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 이 말을 들은 제자는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에 쫓기듯 방을 나갔다고 한다. 이 말은 후세에 한문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말이 되었는데 너와 나, 하늘과 신명이 모두 안다고 해서 일명 사지(四知)라고도 불렸다.

물론 오랜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때는 사부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제자가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양진은 그러한 것까지도 철저하게 배제했던 것이다. 그런 양진이었기에 황제에 대한 간언을 서슴지 않았고 자식들에게까지도 절제와 청렴으로의 삶을 몸소 실천한 그의 이름은 몇 천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청백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 연차의 리스트가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전. 현직 공직자들의 많은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불현듯 북미 치누크 인디언이 떠오른다. 치누크 인디언의 경우 부족들로부터 큰 어른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잔치를 벌려 모든 부족들을 초청해 생선과 고기 모피와 담요 등 재산을 선물로 나눠준다.

다만 바라는 것은 ‘참 대단한 분’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잔치를 ‘포틀래치’(Potlatch)! 라고 불리는 데 치누크 말로 선물이란 뜻이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무 댓가도 없이 자신의 재산을 물 쓰듯 베푸는 게 사회적 지위를 얻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 국어사전에서 선물(Present)을 찾아보았더니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 함. 또는 그 물건’으로 나왔다.

박 연차의 행보가 차이는 있어도 치누크 인디언 사회에서 벌어지는 포틀래치를 연상시킨다. 곳간 속에 쌓아두었던 돈과 달러, 상품권에다 양주며 심지어는 운동화까지 차에 싣고 다니면서 무차별적으로 선물 공세를 폈다. 여당ㆍ야당 가리지 않고 오히려 받지 못한 자들이 못난 사람이 될 정도로 상대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듬뿍듬뿍 안겨주면서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버렸다. 더구나 댓가성 없이 주는 것

더구나 전임 대통령 형과는 패밀리라면서 세를 과시했다. 이 부분에서 치누크 인디언과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박 회장은 “참 대단한 분”이라는 소리만 얻은 게 아니라 뿌린 몇 십 배를 거둬드릴 만큼 대단한 영업맨 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뿌린 결과로 많은 정보를 통해 실리를 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세종증권주식, 휴켐스 거래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혹까지도 일고 있다. 이 세상에 가족도 아닌데 댓가성 없는 돈을, 미친 사람 아니고는 누가 그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가 있겠는가. ‘댓가성 없는 선물’이란 말이 자신의 목을 옥죄는 형장의 밧줄 같은 미끼임을 정녕 몰랐을까. 그렇게 순박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었을까. 믿고 싶지만 아닐 것 같다.

뇌물을 짐짓 선물인 것처럼 꾸미는 건 비단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있는 것 같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선물 속에 영(靈)이 깃들어 있다고 굳게 믿는 부족이다. ‘하우’(Hau)로 불린 이 영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간다는 속성이 있어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어떤 것으로든 이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선물이란 곧 어떤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마오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도 “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 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유명 인사들! 이 낚시 밥에 걸린 미끼인줄 모르고 덥석덥석 받아 삼키고는 순수한 선물로 알고 받았다니. 그 만큼 순수한 사람들이구나 하고 믿어 줄 어리석은 백성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버린다는 걸 모를 정도로

지나친 탐욕은 자기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예로 원숭이를 보자. 바구니 안에 있는 먹이가 아까워 쥐고 있는 손을 펴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잡혀 생골이 갈라지면서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게 아닌가. 양진이 아니라도 너와 내가 알고 하늘과 신이 아는데 어떻게 영원한 비밀로 감추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생각과 말에 차이가 너무 난다. 스스로는 사실에 대

목에 걸린 가시는 빨리 뽑을수록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다는 충고를 해주고 싶다. 솔직히 국민 앞에 사과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드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올해도 쉬이 피고 지는 목련, 꽃망울이 막 피어올랐지만 머지않아 곧 시듦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삶도 그럴진데. 양진이 만큼은 될 수 없어도 원숭이 같은 어리석은 삶으로는 살지 말아야 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리라." 성경말씀처럼 지나친 과욕은 누구 말처럼 패가망신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가족에게 만이라도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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